QWER 소년만화, 팬 2만 7천 명이 골라 준 곡을 하루의 다섯 장면에 나눠 걸어 봤습니다
QWER '소년만화' STAGE CAM l QWER 2nd TOUR [ROCKATION : ROCKET LAUNCH!!] IN SEOUL · QWER (공식 채널)
이 곡은 음원보다 무대가 먼저였습니다. 9월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열린 서울 공연에서 쵸단, 마젠타, 히나, 시연은 아직 나오지 않은 노래 두 곡을 불렀고, 어느 쪽을 타이틀곡으로 낼지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온라인이 함께 정했습니다. 2만 7천여 명이 표를 던져 열에 일곱이 소년만화를 골랐고, 9월 21일 오후 6시에 그 결정이 음원으로 나왔습니다. 곡조는 경쾌한데 가사는 계속 뒤처진 사람의 얘기를 해서, 통째로 틀기보다 하루의 특정 시간에 맞춰 걸어 두면 훨씬 잘 붙습니다.
집을 나서기 싫은 아침에는 첫 소절만 반복해도 됩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건 다짐이 아니라 한숨 쪽에 가깝습니다. 밤새 챙겨 뒀는데 아침이 되니 하나도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는 상태, 그 답답함이 첫 소절의 정서입니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입니다. 화자는 만화 주인공도 늘 늦게 도착한다는 생각으로 자기를 달랩니다. 위로라기보다 변명에 가까운 말인데,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은 사람한테는 그 변명이 정확히 필요한 크기예요.
그래서 출근이나 등교 준비를 하는 시간에는 첫 소절만 반복해 두는 쪽을 권합니다. 가사가 나보다 먼저 굼떠 주면 내 굼뜬 아침이 조금 덜 민망해집니다.
덧붙이면 이 곡은 제목부터 그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소년만화라는 말을 쓰면서도 빛나는 장면이 아니라 빛나기 전의 지지부진한 구간을 들여다봅니다. 아침에 어울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첫 소절은 응원이 아니라 늦잠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제일 잘 붙습니다.
하루가 어그러진 퇴근길에는 후렴 바로 앞 구간
이 곡에서 가장 공들여 만든 자리는 후렴이 아니라 후렴 직전입니다. 긴 하루가 끝나고 잠깐 주저앉았다가,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일어서기로 마음을 바꾸는 구간이 거기에 놓여 있습니다.
태도가 바뀌는 지점을 후렴에 넘기지 않고 그 앞에 따로 둔 구성이라, 노래는 갑자기 씩씩해지지 않습니다. 씩씩해지기로 마음먹는 과정을 몇 마디 들려주고 나서야 후렴으로 넘어갑니다.
일이 어그러진 날 퇴근길에 걸어 두기 좋은 게 이 대목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몇 분 동안 딱 한 번 마음을 고쳐먹게 하는 길이예요.
두 번째 후렴 앞에도 같은 자리가 한 번 더 나오는데, 이쪽은 내일이 오늘보다는 나을 거라는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있습니다. 같은 구간을 두 번 쓰면서 표정을 바꿔 놓은 셈입니다.
달리기로 마음먹은 날에는 후렴에서 시작하세요
후렴은 이 곡에서 밴드 소리가 가장 크게 열리는 자리입니다. 흩어진 꿈과 울었던 밤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인정한 다음, 그 마음이 결국 꽃처럼 핀다고 말합니다.
성공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믿기로 했다는 얘기라서, 달리는 동안 틀어 놓아도 기가 죽지 않습니다. 이미 잘된 사람의 노래는 뛰는 사람 옆에서 종종 얄밉게 들리거든요.
운동을 시작하는 날이나 오래 미뤄 둔 일을 여는 날이라면 처음부터 듣지 말고 후렴부터 잘라서 거는 방법도 있습니다. 앞을 건너뛰어도 곡이 이상해지지 않게 짜여 있습니다.
공식 채널에 올라온 서울 공연 무대 영상이 3분 21초인데, 후렴에서 관객 소리가 확연히 커집니다. 음원보다 이쪽을 먼저 들어 보면 이 곡의 무게중심이 어디인지 귀로 바로 잡힙니다.
후렴은 잘됐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렇게 믿기로 했다는 고백입니다. 뛰면서 들어도 얄밉지 않은 이유입니다.
어제 한 실수가 자꾸 떠오르는 밤에는 2절
2절은 하루를 되감는 구간입니다. 어제 저지른 실수들이 순서대로 떠오르고, 화자는 그때마다 민망해하다가 어제는 어제일 뿐이라고 스스로 선을 긋습니다.
그런데 그 선이 단단하지는 않습니다. 예상 못 한 일이 또 닥치자 금방 초조해지고, 그래도 견딜 수는 있다는 쪽으로 겨우 방향을 되돌립니다. 흔들리는 걸 감추지 않는 서술이에요.
이불 속에서 이불킥을 반복하는 밤에 어울리는 건 그래서 1절이 아니라 2절입니다. 다 지나갔다고 말해 주는 노래보다, 지금도 흔들리는 중이라고 말해 주는 노래가 그 시간에는 더 잘 듣습니다.
같이 실린 피카레스크는 정반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뻔한 세상에서 내 방식대로 살겠다고 당당하게 나가는 곡이라, 2절을 듣다가 기분을 바꾸고 싶을 때 이어 붙이면 온도 차가 크게 납니다.
다시 해보기로 한 새벽에는 브릿지부터 끝까지
브릿지에서 화자의 시선이 처음으로 밖을 향합니다. 나와 남의 모습이 달라도 상관없고, 두근거리던 순간만 잊지 말자고 말합니다. 몇 번을 넘어져도 그만큼 일어서겠다는 대목이 여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후렴은 앞의 두 번과 같은 멜로디인데 놓인 자리가 다릅니다. 흩어졌던 것들이 다시 맞물리는 때를 그려 놓고, 그때 손안에서 반짝일 꿈을 말합니다. 브릿지를 지나왔기 때문에 같은 선율이 다른 뜻으로 들립니다.
새벽에 뭔가를 다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두 구간만 이어 들어도 충분합니다. 3분짜리 곡에서 마지막 1분이 하는 일이 꽤 큽니다.
QWER은 이 곡을 들고 10월에 타이베이와 후쿠오카, 오사카, 도쿄를 돌고 11월에 쿠알라룸푸르와 방콕, 내년 1월에 홍콩과 싱가포르로 갑니다. 무대에서 먼저 태어난 노래가 다시 무대로 돌아가는 순서인 셈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더 재미있다
- 음원보다 무대가 먼저였던 곡입니다. 서울 공연에서 부른 영상이 발매 당일 공식 채널에 올라와 하루 남짓 만에 조회수 164만 회를 넘겼습니다. 관객 소리가 섞인 채로 먼저 들어 보면 곡이 어디서 커지는지 몸으로 걸립니다.
- 후렴이 세 번 나오는데 앞의 두 번은 다짐에 가깝고 마지막 한 번은 이미 건너온 사람의 말처럼 들립니다. 브릿지를 사이에 두고 같은 멜로디의 뜻이 바뀌는 구성이라, 순서대로 들어야 그 차이가 보입니다.
- 타이틀곡을 정한 투표에서 나머지 표는 함께 실린 피카레스크로 갔습니다. 두 곡을 나란히 걸어 두고 오늘 내 손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보는 것도 이 싱글을 듣는 방법입니다.
다섯 장면으로 나눠 놓긴 했지만 곡 자체는 3분이 조금 넘는 길이라 어디서 시작해도 금방 끝까지 갑니다. 오늘 어느 대목에서 마음이 걸리는지 한 번 보세요. 걸리는 자리가 곧 오늘 내가 서 있는 지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