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 침상에 둘러선 열두 아들을 떠올리며 이번 주에 해 볼 여섯 가지
본문 범위 창세기 49장 1절-33절
방 안에 열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침상에는 백 마흔 해를 넘긴 아버지가 앉아 있고요. 야곱은 아들들을 모아 놓고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말하겠다고 입을 엽니다. 맏아들부터 막내까지 한 사람씩 이름이 불려요. 오늘은 그 장면을 짧게 다시 읽고, 이번 주에 손에 잡히는 일 몇 가지를 골라 적었습니다.
맏아들의 이름이 먼저 불렸지만 첫 축복은 아니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시작은 이렇게 따뜻합니다. 그런데 문장은 금방 꺾여요. 물의 끓음 같았으니 탁월하지 못하리라. 오래전 르우벤이 아버지의 침상에 올랐던 일을 야곱은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는데도요.
시므온과 레위는 둘이 한꺼번에 불립니다.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라는 말이 붙어요. 세겜에서 누이 디나의 일로 성 안 남자들을 죽였던 날이 이 짧은 몇 줄에 다 들어 있습니다. 야곱은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라고 말해요. 아들을 미워해서 하는 말이라기보다, 그날의 분노와 자기를 떼어 놓겠다는 다짐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넷째 유다에게 와서야 말의 결이 바뀝니다.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되리라. 사자 새끼에 비유되고,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아요. 다말 앞에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 하고 고개를 숙였던 사람, 베냐민을 대신해 종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 바로 이 유다였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말은 지난 세월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맏아들이라는 자리보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먼저 불렸어요.
짧게 지나간 이름들 사이에 기도 한 줄이 끼어 있다
스불론은 해변에, 잇사갈은 짐을 지는 건장한 나귀로, 단은 길의 뱀으로 그려집니다. 한두 절이면 끝나는 짧은 말들이에요. 그런데 단의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야곱은 갑자기 아들들 쪽이 아닌 다른 곳을 봅니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18절).
축복을 하다 말고 기도가 튀어나온 셈입니다. 앞뒤 어느 아들에게도 걸리지 않는 한 줄이라 더 눈에 띄어요. 열두 아들의 앞날을 말하던 노인도 결국 자기 손으로 다 쥘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갓과 아셀과 납달리가 그 뒤로 이어지고, 요셉 차례가 옵니다.
요셉에게 하는 말은 유난히 깁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 담을 넘은 가지. 활 쏘는 자가 그를 쏘고 괴롭혔지만 그의 활은 오히려 단단했다고 해요. 형들에게 팔리고 옥에 갇혔던 세월이 이 몇 마디에 겹쳐 보입니다. 마지막은 막내 베냐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나누는 이리입니다.
28절은 이 모든 말을 한 문장으로 묶습니다.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똑같이 나눠 준 축복이 아니었어요.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본문은 그 전부를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꾸짖음이 섞인 말까지 본문은 축복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번 주 하루에 하나씩, 침상 곁에서 배운 여섯 가지
본문을 다시 읽고 이번 주에 해 볼 만한 일을 여섯 개로 추렸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이고, 일요일은 돌아보는 날로 비워 둡니다. 다 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 월요일, 오래 마음에 걸려 있는 일 하나를 종이에 적어 봅니다. 르우벤의 일은 몇십 년이 지나도 야곱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묻어 둔다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름이라도 붙여 두는 게 먼저입니다.
☐ 화요일, 최근에 화가 나서 한 말이나 행동을 하나 떠올려 봅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분노는 그 순간 정당해 보였을 거예요. 그 일을 지금 다시 하라면 어떻게 하겠는지, 한 줄로만 답해 봅니다.
☐ 수요일, 예전에 잘못했다가 달라진 사람을 한 명 떠올리고 그 사람에게 짧게 연락해 봅니다. 유다가 받은 축복은 그가 바뀐 뒤에 왔어요. 누군가의 지난 모습만 붙들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는 날입니다.
☐ 목요일, 할 일 목록 한가운데 기도 한 줄을 끼워 넣어 봅니다. 야곱이 단과 갓 사이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일 하나를 골라 그 줄 옆에 적어 둡니다.
☐ 금요일, 가까운 사람 한 명에게 그 사람에게만 맞는 말을 건네 봅니다. 분량대로라는 말은 똑같이 대하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칭찬 말고,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알아야 할 수 있는 말이면 됩니다.
☐ 토요일, 내가 마지막에 돌아가 묻히고 싶은 자리가 어디인지 생각해 봅니다. 야곱은 십칠 년을 산 애굽 땅이 아니라 가나안의 막벨라 굴을 말했어요. 장소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결국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나 약속을 한 줄로 적어 봅니다.
다 지키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여섯 칸 가운데 하나라도 손에 잡히면 이 장을 제대로 읽은 셈이에요.
일요일에는 야곱이 발을 거두던 장면으로 돌아간다
축복을 마친 야곱은 마지막 부탁을 남깁니다.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열조와 함께 장사하라.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거기 묻혔다고 하나씩 이름을 대요. 그리고 덧붙입니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평생 덜 사랑받았던 아내의 무덤이 이 장에서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33절은 아주 조용하게 끝나요.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다하여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할 말을 다 하고 나서 발을 거둡니다. 서두르지도, 미루지도 않은 끝이었어요.
주말에는 체크한 칸을 세기보다 이 질문 하나만 붙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에 누군가에게 그 사람의 분량에 맞는 말을 건넸는가.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그걸 미루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답이 길 필요는 없어요.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묵상 포인트
- 첫째, 야곱은 맏아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았습니다. 축복이라는 이름 안에 지난 잘못까지 담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정직한 말은 칭찬보다 무겁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 둘째, 열두 아들의 앞날을 말하던 한가운데서 야곱은 주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고백합니다. 남의 앞날을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자기 끝은 손에 쥐고 있지 않았어요. 그걸 아는 사람의 말에는 겸손이 묻어납니다.
- 셋째, 마지막 부탁에서 야곱은 레아의 이름을 꺼냅니다. 살아 있을 때 충분히 하지 못했던 마음이 이렇게 늦게 한 줄로 남았어요. 이번 주에는 늦기 전에 건넬 말 하나를 미리 꺼내 두면 좋겠습니다.
창세기 49장은 한 아버지가 아들들을 하나씩 불러 세우는 장입니다. 누구도 같은 말을 듣지 않았고, 누구도 빠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할 말을 다 마친 사람이 조용히 발을 거둡니다. 이번 주 여섯 칸이 다 채워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방에 서 있던 열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얼굴이라도 오래 남는다면, 그걸로 이 장을 읽은 보람은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