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범위  창세기 30장 1절-24절

하란의 들판에 모여 선 천막들을 떠올려 봅니다. 한 천막에서는 아이 넷이 뛰어다니고, 다른 천막은 조용합니다. 조용한 쪽의 주인은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30장을 그 한 사람의 자리에서 읽어 봅니다.

사랑을 받던 사람이 먼저 죽겠다고 말합니다

해 질 녘 들판의 천막 입구 앞에 빈 물동이 하나가 놓여 있고 천막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파스텔 수채화

29장이 끝날 때 레아에게는 아들이 넷 있었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일주일 사이로 같은 남편에게 시집온 동생 라헬에게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야곱의 마음은 라헬에게 있었는데 아이들은 전부 언니의 천막에서 자랐습니다.

30장은 라헬의 속마음으로 문을 엽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투기라는 말을 본문이 직접 씁니다. 그리고 곧바로 라헬의 첫마디가 나옵니다.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사랑받지 못한 레아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남편의 마음을 기다렸다면, 사랑받는 라헬은 아이가 없어서 죽겠다고 합니다. 두 자매는 서로 상대가 가진 것을 갖지 못해 괴로웠습니다.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었습니다.

야곱의 대답은 차갑습니다. 2절에서 그는 노를 발하여 말합니다.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라헬은 더 기댈 데가 없어집니다. 남편에게 한 부탁이 하나님께로 되돌아왔고, 라헬은 그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대신 다른 길을 찾습니다.

라헬이 30장에서 처음 한 말은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였습니다.

라헬은 여종을 들이고 합환채를 사서 길을 냅니다

초여름 밀밭 가장자리 풀숲에 노란 열매가 달린 낮은 풀 몇 포기와 작은 버들 바구니가 놓인 파스텔 수채화

첫 번째 길은 여종 빌하였습니다. 3절에서 라헬은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합니다. 야곱의 할머니 사라가 하갈을 들였던 바로 그 방법입니다. 빌하가 아들을 낳자 라헬은 그 아이를 단이라 부르며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셨다고 합니다.

둘째 아이의 이름에서 라헬의 속이 더 드러납니다. 8절,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그래서 납달리입니다. 아이의 이름이 언니와의 싸움에서 나왔습니다. 라헬이 바란 게 아이만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바랐습니다.

두 번째 길은 합환채였습니다. 밀을 거두던 때에 레아의 맏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 와 어머니에게 드립니다. 합환채는 아이를 갖게 해 준다고 여겨 온 풀입니다. 라헬은 그것을 달라고 합니다. 레아는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하고 쏘아붙입니다. 라헬은 오늘 밤 남편을 언니에게 보내는 것으로 값을 치릅니다.

이 장면에서 라헬은 자기가 쥔 것으로 자기가 없는 것을 사려 합니다. 남편의 사랑은 있었고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보낼 하룻밤을 내주고 아이를 부른다는 풀 몇 뿌리를 받았습니다. 그때로서는 할 수 있는 걸 다 한 셈이었습니다.

라헬은 남편과 보낼 하룻밤을 내주고, 아이를 부른다는 풀 몇 뿌리를 받았습니다.

아이는 합환채가 아니라 생각하신 데서 왔습니다

이른 아침 들판의 천막 휘장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천막 옆 풀밭에 흰 꽃 한 송이가 새로 핀 파스텔 수채화

합환채를 받은 쪽은 라헬인데 그 밤 뒤에 아이를 가진 쪽은 레아입니다. 17절은 이렇게 적습니다.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레아는 다섯째 잇사갈과 여섯째 스불론을 낳고 딸 디나까지 얻습니다. 라헬의 천막은 그동안에도 조용합니다. 본문은 합환채가 어떻게 됐는지 한마디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22절에서 말투가 바뀝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 라헬이 무엇을 해서가 아닙니다. 여종도, 풀도, 하룻밤의 거래도 이 문장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고 들으셨다는 말만 있습니다.

들으셨다는 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라헬이 무엇을 기도했는지 본문은 한 줄도 옮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들은 라헬의 말은 죽겠다, 억울하다, 이겼다, 합환채를 달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던 소리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아들을 낳은 라헬은 23절에서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말합니다. 죽겠다던 첫마디가 부끄러움이 씻겼다는 말로 바뀝니다. 그리고 25절,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은 비로소 라반에게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합니다. 이 아이가 태어난 뒤에야 온 집안이 하란을 떠날 채비를 합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이 문장에는 여종도 합환채도 나오지 않습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에 라헬의 다음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넓은 들판 사이로 먼 언덕 너머까지 흙길이 이어지고 길가에 양 떼가 풀을 뜯는 이른 오후의 파스텔 수채화

라헬은 첫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 짓습니다. 24절이 그 뜻을 풀어 줍니다.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래 기다린 아이를 품에 안은 그 순간에 라헬은 벌써 다음 아이를 구합니다. 그만큼 오래 목말랐던 사람의 말입니다.

그 바람은 이루어집니다. 다만 한참 뒤, 35장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위에서입니다. 라헬은 둘째 아들을 낳다가 숨을 거두고 길가에 묻힙니다. 30장만 읽으면 해피엔딩 같은 이름이 성경 전체에서는 조금 더 무겁게 읽히는 이유입니다.

라헬 이야기를 오늘 우리 이야기로 가져오면 이렇습니다. 가진 것은 잘 보이지 않고 없는 것은 크게 보입니다. 그 빈자리를 메우려고 사람을 들이고, 값을 치르고, 이겼다고 이름을 붙입니다. 30장은 그런 라헬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수가 끝난 자리에 하나님이 생각하셨다는 한 문장을 놓아 둡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다른 아들을 더하시기를 바란다는 뜻이었습니다.

묵상 포인트

  1. 첫째, 라헬과 레아는 한 천막 안에 살지 않았을 뿐 서로를 늘 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남편의 마음을, 한 사람은 아이를 부러워했습니다. 곁의 사람이 가진 것을 세다 보면 내게 이미 있는 것은 셈에서 빠집니다.
  2. 둘째, 라헬이 쓴 방법들은 그 시대 사람이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본문은 그 방법을 꾸짖지도 칭찬하지도 않고,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만 분명히 적습니다. 애쓴 일과 받은 것 사이에 늘 곧은 줄이 있지는 않습니다.
  3. 셋째,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22절 앞에는 라헬의 기도문이 없습니다. 투기와 원망과 거래의 말 사이에서도 들을 소리를 찾으신 분이 계셨습니다. 말이 반듯하지 않은 날에도 그 자리는 닫혀 있지 않습니다.

30장의 첫 문장에서 라헬은 언니를 보며 투기합니다. 스물두 번째 절에 와서야 라헬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나옵니다. 그 사이에 여종이 두 아이를 낳고, 합환채가 오가고, 언니가 세 아이를 더 낳습니다. 라헬에게는 길고 조용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 시간을 지나 품에 안은 아이가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는 요셉입니다. 라헬은 그걸 보지 못했지만, 이 장을 읽는 우리는 압니다. 가장 늦게 온 아이에게서 온 집안을 살릴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