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장, 유다와 다말 이야기를 읽으면 자꾸 걸리는 네 가지 질문
본문 범위 창세기 38장 1절-30절
요셉이 애굽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 간 바로 다음 장면에서, 성경은 카메라를 엉뚱한 곳으로 돌립니다. 형들 곁을 떠나 아둘람으로 내려간 유다. 그의 세 아들과 며느리 다말, 그리고 딤나로 가는 길가의 문 하나. 처음 읽으면 당황스럽고, 두 번 읽으면 질문이 생기는 장입니다. 그 질문 네 개를 하나씩 본문에 대어 봅니다.
요셉 이야기가 한창인데, 왜 여기서 유다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37장은 요셉이 보디발에게 팔렸다는 문장으로 끝납니다. 39장은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 내려갔다는 문장으로 다시 시작하고요. 그 사이에 38장이 통째로 끼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끊어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첫 절을 천천히 읽으면 끊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갔다. 38장은 이렇게 열립니다. 바로 앞 장에서 동생을 팔자고 말한 사람이 유다였어요. 피를 흘리지 말고 팔아 버리자, 그는 우리 골육이라고.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는 형제들 곁을 떠납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내려가던 무렵, 유다도 자기 식으로 내려가고 있었던 셈이에요.
두 장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게 보입니다. 37장에서 형들은 피 묻은 채색옷을 아버지에게 보내며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고 말했어요. 야곱은 그것을 알아보고 무너졌습니다. 38장 끝에서 다말은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시아버지에게 보내며 청컨대 보소서, 이것이 뉘 것이니이까 하고 묻습니다. 이번에는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봐요.
아버지를 속이려고 물건을 내밀었던 사람이, 이제는 남이 내민 물건 앞에서 자기 얼굴을 보게 된 겁니다. 그러니 38장은 곁가지가 아닙니다. 요셉이 구덩이와 종살이를 지나는 동안, 그를 판 형도 자기 몫의 길을 따로 걷고 있었다는 기록이에요.
보소서, 이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37장에서 아버지에게 던졌던 그 물음이 38장에서 유다에게 되돌아옵니다.
오난은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던 걸까요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혼인해 엘, 오난, 셀라 세 아들을 얻습니다. 맏아들 엘에게 다말을 아내로 데려왔는데,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해서 죽습니다. 무엇이 악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아요. 짧게 적고 넘어갑니다.
그러자 유다가 둘째 오난에게 말합니다. 형수에게 들어가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해서 형을 위해 씨가 있게 하라. 자식 없이 죽은 형의 이름이 끊기지 않도록 동생이 대를 이어 주던 그 시대의 관습이에요. 이때 태어난 아이는 동생이 아니라 죽은 형의 자식으로 셈해졌습니다.
9절이 오난의 속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고요. 그래서 그는 형수에게 들어가기는 했지만, 형에게 아들이 생기지 않도록 일을 틀어 버립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따르는 척하고, 속으로는 형의 몫을 지운 거예요.
그러니 오난의 잘못은 몸에 관한 규칙 하나를 어긴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형의 이름을 세워 주라는 자리에 들어가서 그 이름이 다시는 서지 못하게 막았어요. 그 손해는 고스란히 다말에게 돌아갔습니다.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는 과부로 남게 됐으니까요. 10절은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고 적습니다.
오난은 본분의 자리에 들어가서, 그 본분이 지켜야 할 이름을 지웠습니다.
다말은 왜 길가에 앉아 시아버지를 기다렸을까요

아들 둘을 잃은 유다는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으면서 셀라가 자라기를 기다리라고요. 그런데 11절은 유다의 속마음을 한 줄 덧붙입니다. 셀라도 그 형들처럼 죽을까 염려했다는 거예요. 기다리라는 말은 사실상 미뤄 두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유다의 아내가 죽고, 유다는 친구 히라와 함께 양털 깎는 딤나로 올라갑니다. 그 소식이 다말에게 들려와요. 14절이 다말이 움직인 이유를 직접 밝힙니다. 셀라가 다 자란 걸 보았는데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요.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얼굴을 가린 채 딤나로 가는 길가 에나임 문에 앉습니다. 유다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창녀로 여겨 다가와요. 다말이 값을 묻자 유다는 염소 새끼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때 다말이 요구한 게 눈여겨볼 대목이에요.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손에 든 지팡이를 맡겨 두라는 겁니다.
도장과 끈과 지팡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물건이었습니다. 다말이 원한 건 염소가 아니라 그 이름이었던 거예요. 집안이 끝내 지켜 주지 않던 약속을, 그녀는 유다 자신의 손으로 내놓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과부의 옷을 입고 돌아갑니다. 나중에 히라가 염소를 들고 찾아왔을 때, 그곳 사람들은 여기에 그런 여인은 없다고 대답했어요.
다말이 맡아 둔 것은 염소 새끼 값이 아니라, 유다라는 이름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 한마디는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석 달쯤 지나 다말이 잉태했다는 말이 유다 귀에 들어갑니다. 유다의 대답은 짧고 차갑습니다. 끌어내어 불사르라. 자기도 길가에서 같은 일을 했으면서, 남의 일에는 이렇게 단호했어요.
끌려 나가던 다말은 물건 세 가지를 시아버지에게 보냅니다. 이 물건 임자 때문에 잉태했으니 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가 누구 것인지 보시라고요. 여기서 다말은 사람들 앞에서 유다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물건만 보내고 판단은 그에게 맡겨요. 유다가 침묵했다면 그녀는 그대로 불에 들어갔을 겁니다.
유다는 그것들을 알아보고 말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변명은 한 줄도 붙이지 않아요. 37장에서 동생을 판 뒤 아버지를 속이던 사람이, 여기서 처음으로 자기 잘못을 자기 입으로 말합니다. 창세기에서 유다가 바뀌기 시작하는 자리가 바로 이 한마디라고 봅니다. 몇 장 뒤 그는 막내 베냐민 대신 자기가 종이 되겠다고 나서게 돼요.
다말은 쌍둥이를 낳습니다. 해산할 때 한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산파가 붉은 실을 매어 두었는데, 그 손이 들어가고 다른 아이가 먼저 나와요. 터뜨리고 나왔다고 해서 베레스, 붉은 실을 맨 아이는 세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마태복음 1장 3절은 이렇게 적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지워질 뻔했던 이름이 계보 맨 앞자리에 남았어요.
그는 나보다 옳도다. 유다가 처음으로 자기 잘못을 자기 입으로 말한 문장입니다.
묵상 포인트
- 첫째, 38장에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엘과 오난의 죽음 말고는 사람들의 거래와 침묵만 이어져요. 그런데도 끊길 뻔한 이름이 결국 이어졌습니다. 아무 말씀도 들리지 않는 시간에도 이야기가 멈춘 건 아니었다는 걸 이 장이 보여 줍니다.
- 둘째, 유다는 남의 잘못에는 불사르라고 즉시 말했고, 자기 잘못은 물건을 눈앞에 두고서야 인정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말이 빠르게 나올 때, 내 손에 들려 있던 도장과 지팡이를 한 번쯤 떠올려 볼 만합니다.
- 셋째, 다말은 사람들 앞에서 유다를 지목하지 않고 물건만 보냈습니다. 옳은 쪽에 서 있으면서도 상대가 스스로 알아볼 자리를 남겨 둔 거예요. 이기는 말보다 알아보게 하는 침묵이 더 멀리 가는 때가 있습니다.
창세기 38장은 처음엔 엉뚱한 곳에 끼어든 불편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나씩 들고 본문에 대어 보면, 동생을 팔았던 유다가 처음으로 자기 잘못을 말하는 장이었어요. 그리고 그 고백 덕분에 다말과 두 아이가 살아남습니다. 다음 장에서 이야기는 다시 애굽의 요셉에게 돌아가요. 이번에는 유다가 걸어온 길을 알고 읽으니, 형제들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