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범위  창세기 33장 1절-20절

오늘은 한 장을 다 훑지 않고 한 절에 오래 머뭅니다. 창세기 33장 10절, 야곱이 형 에서 앞에서 한 말이에요.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룻밤 전 하나님과 씨름하고 다리를 절며 걸어 나온 사람이 했기에 이 말은 가볍게 넘길 수가 없습니다.

이 한 줄 앞에는 밤새 씨름한 강가가 있다

이른 아침 광야 언덕에서 내려다본 흙길 끝 지평선에 큰 무리가 일으킨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가까이에는 천막과 양 떼가 기다리는 파스텔 수채화

33장은 야곱이 눈을 드는 데서 시작합니다.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어요. 전날 사자들에게 들었던 바로 그 숫자입니다. 야곱은 자식들을 나눠 맡기는데 순서가 분명해요. 여종들과 그 자식들을 맨 앞에, 레아와 그 자식들을 다음에,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둡니다. 누구를 가장 지키고 싶었는지 이 줄 세우기가 다 말해 줍니다.

그런데 3절에서 달라지는 게 하나 있어요. 32장에서는 예물 떼를 앞세우고 자기는 뒤에 있었습니다. 이번엔 그가 모두의 앞으로 나아갑니다.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면서 형에게 가까이 가요. 얍복 나루에서 홀로 남았던 밤이 그를 맨 앞자리로 걸어 나오게 했습니다.

4절은 짧고 뜨겁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입 맞추고, 둘이 함께 웁니다. 스무 해 동안 야곱이 그려 온 장면은 아마 이런 게 아니었을 거예요. 사백 명은 칼을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대화가 이어집니다. 에서가 이 모든 떼는 무엇이냐고 묻고, 야곱은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라고 답해요. 에서는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고 합니다. 10절은 그 거절에 대한 야곱의 대답이에요. 받아 달라는 간청 한가운데에 얼굴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예물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이 이번엔 맨 앞으로 나아가 일곱 번 절합니다. 10절은 그 걸음 끝에서 나온 말이에요.

얼굴과 은혜, 두 단어를 붙들고 다시 읽으면

광야에서 두 갈래 흙길이 하나로 만나는 자리에 지팡이 하나와 겉옷 한 자락이 놓여 있고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번지는 파스텔 수채화

이 구절의 무게는 얼굴이라는 단어에 실려 있습니다. 32장 20절에서 야곱은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했어요. 우리말로는 감정, 대면이라고 옮겼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한 절에 얼굴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그의 얼굴을 덮고, 내 얼굴 앞서 보내는 예물로, 그의 얼굴을 보면, 혹시 내 얼굴을 들어 주리라. 야곱의 머릿속은 온통 형의 얼굴이었어요.

그리고 같은 밤, 얍복 나루에서 씨름이 끝난 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에요.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했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았다는 고백이 바로 전날 밤의 일입니다.

그러니 10절은 그냥 하는 아첨이 아니에요. 죽일까 봐 두려웠던 얼굴이 달려와 안아 주었을 때, 야곱은 그 얼굴에서 전날 밤 본 얼굴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죽어도 할 말 없는 자리에서 살려 준 얼굴이라는 점에서 둘이 겹쳤던 거예요.

또 하나 붙들 단어는 은혜입니다. 이 장에는 은혜라는 말이 다섯 번 나와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자식(5절), 은혜를 입으려 함(8절), 은혜를 얻었사오면(10절),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고(11절), 은혜를 얻게 하소서(15절). 야곱은 형에게서 받고 싶은 것도, 하나님께 이미 받은 것도 같은 말로 부릅니다.

형의 얼굴을 덮으려던 사람이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브니엘의 밤이 이 한 줄 바로 뒤에 붙어 있어요.

스무 해 전에 빼앗은 복을 이제 내려놓으며

들판 가득 흩어져 풀을 뜯는 염소와 양, 낙타와 소와 나귀 무리를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따뜻한 오후의 파스텔 수채화

이 구절을 더 깊이 읽으려면 27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에서로 알고 축복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에서는 아우가 내 복을 빼앗았다고 울었고, 41절에서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으니 야곱을 죽이리라 마음먹습니다. 야곱이 집을 떠난 이유가 그 말이었어요.

그런데 33장의 야곱은 형을 거듭 내 주라 부르고 일곱 번 땅에 엎드립니다. 형제들의 주가 되리라는 복을 받았던 사람이 형 앞에 스스로 엎드린 거예요. 스무 해 전 손에 쥐었던 그 자리를 이 아침에 제 발로 내려놓았습니다.

11절에는 우리말 성경만 읽어서는 잘 안 보이는 말이 하나 있어요. 10절의 예물은 히브리어로 선물을 뜻하는 민하인데, 11절에서 야곱은 내가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할 때 단어를 바꿉니다. 원문 그대로 옮기면 나의 복을 받으소서, 베라카예요. 에서가 빼앗겼다고 울던 바로 그 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1절 끝의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는 대목이 묵직하게 남습니다. 야곱은 형이 받을 때까지 조르듯 권했어요. 짐승 떼를 넘겨주는 것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었던 거겠지요. 에서가 그걸 받아 들고서야 스무 해 묵은 빚이 조금은 풀립니다.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원문으로는 나의 복을 받으소서. 빼앗았던 복을 형의 손에 돌려드리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이 구절은 어디서 다시 읽히는가

골짜기 들판에 나뭇가지와 풀로 엮은 낮은 우릿간 여러 채와 흙벽 집 한 채가 있고 새끼 양과 송아지가 쉬는 저녁의 파스텔 수채화

그렇다고 33장이 모든 게 깨끗이 정리된 장면으로 끝나지는 않아요. 에서가 함께 가자 하자 야곱은 자식들이 유약하고 새끼 딸린 짐승이 있으니 천천히 가겠다며 세일로 가겠다고 합니다. 종자 몇을 남겨 주겠다는 것도 사양해요. 그리고 16절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절에 야곱은 숙곳으로 가서 집과 우릿간을 짓습니다. 화해는 했지만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어요.

본문은 그걸 탓하지도 덮지도 않습니다. 끌어안고 울었던 형제가 각자 제 길로 갔다는 것만 담담히 적어요. 얼굴을 보고 은혜를 입는 일과, 한집에 섞여 사는 일은 다를 수 있습니다. 10절의 고백이 진심이었다는 것과 17절의 갈림길이 함께 있어요.

이 구절을 지금 읽는 자리는 아마 우리가 가장 마주하기 싫은 얼굴 앞일 겁니다. 오래 피해 온 사람, 내가 먼저 상처를 준 사람이요. 야곱은 그 얼굴을 덮으려고 밤새 계산했는데, 정작 만나 보니 거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봤습니다. 두려워하던 얼굴이 은혜가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 그게 10절이 남겨 둔 말이에요.

33장은 세겜 앞에 장막을 치고 단을 쌓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야곱은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러요.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전날 밤 받은 새 이름을 처음으로 제 입으로 부른 자리입니다.

끌어안고 울었던 형제는 각자 세일과 숙곳으로 갔습니다. 본문은 화해와 갈림길을 나란히 적어 둡니다.

묵상 포인트

  1. 첫째, 야곱이 그토록 덮고 싶었던 형의 얼굴은 달려와 안아 주는 얼굴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키운 얼굴과 실제로 마주한 얼굴은 다를 수 있어요. 두려움이 그려 둔 그림보다 만남이 더 너그러울 때가 있습니다.
  2. 둘째, 형제들의 주가 되리라던 복을 받은 사람이 형 앞에 일곱 번 엎드렸어요. 붙잡고 있던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을 때 비로소 돌려줄 수 있는 것이 생깁니다. 나의 복을 받으소서라는 말은 그 내려놓음 끝에서 나왔습니다.
  3. 셋째, 화해했다고 꼭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건 아니었어요. 에서는 세일로, 야곱은 숙곳으로 갔습니다. 은혜를 입은 관계도 저마다의 걸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33장은 숨기지 않습니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았다고 했고, 33장에서는 형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얼굴 같다고 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두 얼굴이 하나로 겹쳤어요. 10절을 몇 번 소리 내어 읽다 보면 한 가지가 남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은 사람의 얼굴도 다르게 보게 된다는 것. 오래 미뤄 둔 얼굴 하나가 떠오른다면, 오늘 이 구절은 거기서부터 다시 읽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