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장을 시간순으로, 문이 닫히던 방에서 수레가 장막 앞에 서기까지
본문 범위 창세기 45장 1절-28절
방 안이 조용합니다. 유다는 동생 대신 자기가 종으로 남겠다는 말을 막 마쳤고, 형제들은 아직 땅에 엎드려 있어요. 애굽의 총리는 대답이 없습니다. 45장은 바로 그 침묵에서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이 장을 일어난 순서대로 네 토막으로 나눠 읽어 보려고 해요. 방에서 사람들이 나가기 전, 이름을 밝히는 순간, 그 뒤의 울음과 부탁, 그리고 가나안 장막 앞에 수레가 멈춘 저녁까지입니다.
말이 끝난 방에서 요셉은 사람들부터 내보냈습니다

1절은 요셉이 더 버티지 못했다는 말로 엽니다.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42장부터 요셉은 여러 번 울었어요. 형들이 저희끼리 르우벤의 말을 주고받을 때 돌아서서 울었고, 베냐민을 처음 봤을 때는 급히 안방에 들어가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왔습니다. 늘 들키지 않게 자리를 피했던 울음이에요.
이번엔 피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을 내보내요.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본문은 굳이 한 줄을 더 붙입니다. 그때 그와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애굽 사람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방에는 열한 형제와 요셉만 있습니다.
그러고는 소리 내어 웁니다. 방성대곡이라는 말이 붙을 만큼 큰 울음이었어요. 사람들은 다 내보냈는데 울음소리는 벽을 넘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듣고, 바로의 궁중까지 들렸다고 해요. 문은 닫았지만 소리까지 가둘 수는 없었던 거죠.
사람들은 내보낼 수 있었지만 울음소리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스무 해 넘게 참아 온 것이 그 방에서 한꺼번에 터집니다.
나는 요셉이라는 말 다음에 그가 꺼낸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요셉의 첫마디는 아주 짧습니다. 나는 요셉이라. 그리고 곧바로 묻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은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이미 말했어요. 그런데도 다시 묻습니다. 통역을 거치지 않고 제 입으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을 거예요.
형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놀랐다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순간이었겠지요. 은 이십에 넘긴 동생이 애굽의 둘째 권력자로 눈앞에 서 있습니다. 잔을 훔쳤다는 누명보다 이쪽이 훨씬 무서운 소식이었어요.
요셉은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형들이 다가서자 다시 말해요.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판 일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 일을 빼고는 자기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다음 말이 이 장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같은 말을 세 번 되풀이합니다. 5절에서 한 번, 7절에서 한 번, 8절에서는 아예 이렇게 정리해요.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판 일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요셉도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다만 그 일을 보는 자리를 옮깁니다. 흉년은 두 해가 지났고 아직 다섯 해가 남았어요. 요셉은 형들이 저지른 일보다, 그 일 위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먼저 말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판 일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일을 하나님이 앞서 보내신 일로 다시 읽어 줍니다.
울음 끝에 형들이 비로소 입을 열었고, 바로는 수레를 내주었습니다

요셉은 쉬지 않고 말을 잇습니다. 속히 아버지께 올라가 이렇게 전하라고요.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 애굽 전국의 주가 되었으니 지체 말고 내려오시라. 고센 땅에 아들들과 손자들과 양과 소를 다 데리고 와서 내 가까이 사시라. 흉년이 아직 다섯 해 남았으니 내가 거기서 봉양하겠다. 전할 말을 하나하나 불러 주는 사람 같아요.
그리고 베냐민의 목을 안고 웁니다.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울어요.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두 아들이 그렇게 서로 붙듭니다. 요셉은 형들과도 차례로 입 맞추고 안고 웁니다. 본문은 여기에 짧은 한 줄을 남겨요.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37장에는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그에게 평안한 말을 할 수 없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때 끊긴 말이 45장 15절에 와서야 다시 이어져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형제가 다시 마주 보고 말을 한다는 사실 하나만 남깁니다.
소문은 금세 궁으로 갑니다. 바로와 신하들이 기뻐하고, 바로가 직접 명을 내려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아비를 데려오라. 기구는 아끼지 말라,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다 너희 것이다. 요셉은 그대로 수레와 길 양식을 내주고, 형들에게 옷을 한 벌씩,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줍니다. 아버지 몫으로는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좋은 물건을, 암나귀 열 필에 길에서 드실 곡식과 떡을 실어요.
떠나는 형들 등 뒤에 요셉이 한마디를 얹습니다.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짠해지는 말이에요. 집에 가는 길 내내 누가 먼저 팔자고 했는지, 누가 말렸는지 서로 따지게 될 걸 요셉은 알았던 것 같습니다.
37장에서 끊긴 형제의 말이 45장에 와서야 이어집니다.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믿지 못하던 야곱은 마당에 선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형제들은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 아버지 앞에 섭니다. 그리고 그 말을 꺼내요.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은 믿지 않습니다. 본문은 기색하더니라고 적어요. 기운이 빠져 정신이 아득해졌다는 뜻입니다. 스무 해 넘게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에요. 반가움보다 충격이 먼저 왔을 겁니다.
형들은 요셉이 부탁한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전합니다. 그래도 야곱을 일으킨 건 말이 아니었어요.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말은 아직 믿기지 않는데, 마당에 서 있는 애굽 수레는 손으로 만져지는 증거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형들은 예전에도 아버지 앞에 증거를 내밀었던 사람들이에요. 피 묻은 채색옷이었습니다. 그 옷 한 벌이 야곱을 스무 해 넘는 슬픔에 묶어 두었어요. 이번에는 같은 형들이 수레를 끌고 왔고, 그 수레가 아버지를 일으킵니다.
28절에서 본문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더 바라는 게 없다는 말이에요. 애굽의 좋은 것도, 고센의 땅도 그 문장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 가서 본다는 것뿐이에요.
피 묻은 옷 한 벌이 아버지를 무너뜨렸고, 같은 형들이 끌고 온 수레가 그 아버지를 다시 일으킵니다.
묵상 포인트
- 첫째, 요셉은 늘 몰래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왔습니다. 그러다 45장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내보내고 형들 앞에서 웁니다. 오래 감춰 온 마음은 숨길 곳을 찾을 때가 아니라 보여 줄 사람 앞에 설 때 비로소 풀리는 것 같아요.
- 둘째,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는 말과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는 말이 요셉의 입에서 함께 나옵니다. 상처를 없던 일로 덮지 않으면서도 그 위에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걸 요셉이 보여 줘요. 둘 중 하나만 고르지 않아도 됩니다.
- 셋째, 야곱은 말로는 믿지 못하다가 수레를 보고서야 일어섰습니다. 좋은 소식도 너무 오래 기다리면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말 한마디보다 눈앞에 와 닿는 작은 증거 하나가 사람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창세기 45장은 스무 해 넘게 이어진 침묵이 끝나는 장입니다. 방 안에서 요셉이 이름을 밝히고, 형들이 그제야 동생과 말을 나누고, 가나안의 아버지가 수레 앞에서 다시 숨을 고릅니다. 장의 마지막 말은 가서 그를 보리라예요. 야곱은 아직 길을 나서지 않았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그 먼 길을 어떻게 내려가는지는 다음 장에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