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범위  창세기 42장 1절-38절

기근이 가나안까지 번지자 야곱의 아들 열 명이 나귀를 끌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곡식을 파는 총리 앞에 엎드려 절하는데, 그 사람이 스무 해도 더 전에 자기들이 팔아넘긴 동생이라는 걸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요. 총리는 이들을 정탐꾼이라 몰고 사흘을 가둡니다. 이 장면은 흔히 요셉의 통쾌한 앙갚음으로 읽히곤 합니다. 정말 본문이 그렇게 말하는지, 서른여덟 절을 처음부터 다시 따라가 보았습니다.

형들을 옥에 가둔 총리, 흔히는 복수극으로 읽힙니다

고대 애굽 궁전 돌 마당의 높은 단 위 빈 의자와 그 아래 줄지어 쌓인 곡식 자루 수채화

이 장을 두고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이렇습니다. 요셉이 드디어 형들에게 갚아 주었다. 구덩이에 던지고 은 이십에 팔아 버린 형들이 이제는 그 동생 앞에 엎드려 벌벌 떤다. 이야기의 흐름만 보면 그렇게 읽힐 만도 해요.

실제로 요셉이 하는 일은 하나같이 거칩니다. 형들을 알아보고도 모르는 체하며 엄한 소리로 말해요. 아니라고 하는데도 너희는 정탐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합니다. 바로의 생명을 걸고 맹세까지 하고, 열 사람을 한꺼번에 사흘 동안 가둡니다.

풀어 줄 때도 그냥 보내지 않아요. 시므온 하나를 골라 형들 눈앞에서 결박합니다. 그러니 이 장을 37장의 거울로 읽는 사람이 많아요. 그때 형들이 요셉을 묶었듯 이번에는 요셉이 형을 묶었다는 식이지요.

요셉이 하는 일만 골라 놓고 보면 앙갚음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본문이 그것만 적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본문은 그 장면 한가운데에 우는 요셉을 끼워 넣습니다

돌기둥이 늘어선 궁전 복도 끝 반쯤 열린 작은 방으로 늦은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수채화

사흘 뒤 요셉이 꺼낸 첫마디부터 결이 다릅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처음엔 한 사람만 보내 막내를 데려오라 했는데, 이제는 한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곡식을 지고 돌아가라고 해요.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라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가나안에 남은 식구들을 먼저 생각한 거예요.

그 말을 들은 형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립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범죄하였다, 그가 애걸할 때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않았다. 르우벤은 그러기에 내가 뭐라 했느냐고 다그칩니다. 통변을 세워 두었으니 형들은 총리가 그 말을 다 알아듣는 줄 몰랐어요.

그리고 24절이 나옵니다. 요셉이 그들을 떠나 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시므온을 결박하는 장면 바로 앞에 이 짧은 문장이 놓여 있어요. 형들이 스무 해도 더 지난 일을 처음 입 밖에 낸 그 순간, 요셉은 자리를 피해 웁니다. 복수를 즐기는 사람이 흘릴 눈물로는 읽히지 않아요.

형들을 보내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그릇마다 곡물을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이 낸 돈을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길에서 먹을 양식까지 따로 챙겨 줍니다. 앙갚음하려는 사람이라면 굳이 하지 않을 일들이에요.

결박 바로 앞에 울음이 있고, 결박 바로 뒤에 채운 자루와 길 양식이 있습니다.

그렇게 읽히는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시골 객점 마당 나귀 옆에 풀어 놓은 곡식 자루 입구에 작은 은 돈주머니가 얹힌 수채화

그런데도 이 장이 복수극으로 읽히는 건 우리가 형들 자리에 앉아 읽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속을 하나도 모릅니다. 들리는 건 엄한 목소리와 정탐이라는 누명뿐이에요. 요셉이 울러 나간 것도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그 사람은 끝까지 무섭기만 했어요.

돌려준 돈도 형들에게는 은혜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객점에서 자루를 푼 한 사람이 돈을 발견하자 모두 혼이 나서 떨며 말해요.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 가나안에 돌아와 자루를 다 쏟아 보니 돈뭉치가 하나씩 다 들어 있었고, 아비까지 함께 두려워합니다.

9절도 오해를 거듭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형들이 땅에 엎드려 절하는 걸 보며 옛 꿈을 떠올렸다는 이 대목을, 이제야 이겼다는 뜻으로 읽기 쉬워요. 하지만 본문은 꿈을 떠올렸다고만 적을 뿐 그 마음이 통쾌했다고는 쓰지 않습니다. 그 빈자리를 읽는 사람이 채우는 거지요.

형들이 본 것은 무서운 총리뿐이었고, 우리는 자주 그 눈으로 이 장을 읽습니다.

요셉이 직접 붙인 이름은 복수가 아니라 시험이었습니다

해 질 녘 메마른 언덕 사이 흙길을 따라 곡식을 실은 나귀들이 멀리 장막 쪽으로 걸어가는 수채화

요셉은 자기가 하는 일을 직접 설명합니다.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15절과 16절에서 진실함을 증명하라, 시험하겠다는 말이 거듭 나와요. 형들이 정말 정탐이냐가 궁금했던 건 아닐 겁니다. 스무 해도 더 전에 동생을 팔아넘긴 그 사람들이 지금도 그대로인지, 막내 베냐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시험은 42장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장은 야곱의 탄식으로 닫혀요.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는데 베냐민까지 데려가려 하느냐. 르우벤이 두 아들을 걸겠다고 나서도 야곱은 막내를 내주지 않습니다.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된다는 말을 남기면서요.

그러니 42장을 복수로도, 용서로도 서둘러 닫지 않는 편이 본문에 더 가깝습니다. 요셉은 아직 자기를 밝히지 않았고, 형들은 이제 막 옛일을 입에 올렸을 뿐이에요. 한쪽은 숨어서 울고 다른 쪽은 영문도 모른 채 떨고 있는 장. 이야기는 그 상태로 43장을 기다립니다.

이 장에서 요셉이 스스로 붙인 말은 시험입니다. 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묵상 포인트

  1. 첫째, 누군가의 행동만 보고 마음까지 짐작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42장의 형들도 엄한 목소리만 들었지 울러 나간 뒷모습은 보지 못했어요. 내가 보지 못한 자리에서 그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지 한 번쯤 헤아려 봅니다.
  2. 둘째, 형들은 스무 해 넘게 묻어 둔 일을 옥에 갇힌 사흘 끝에야 꺼냈습니다. 그것도 상대가 못 알아듣는 줄 알고서요. 오래 미뤄 둔 말이 내게도 있다면 어떤 상황이 되어야 그 말을 꺼낼지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3. 셋째, 돌려받은 돈 앞에서 형들은 기뻐하는 대신 떨었습니다. 받은 호의를 두려움으로 먼저 읽는 마음이 내게도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일단 받아 두는 것이 필요한 때도 있겠지요.

창세기 42장은 시원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형들은 시므온을 두고 돌아왔고, 자루 속 돈은 그대로 수수께끼로 남았고, 야곱은 막내를 끌어안은 채 버팁니다. 요셉의 마음은 24절의 한 줄로만 비쳐요. 그 한 줄을 빼고 읽으면 복수극이 되고, 그 한 줄을 넣고 읽으면 아직 끝나지 않은 시험이 됩니다. 기근은 그치지 않았고 곡식은 언젠가 바닥이 나니, 형들은 결국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