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는 100달러를 넘는데 주유소 기름값은 22주째 내립니다 — 넉 달째 묶인 1,784원의 정체
주유소 가격판 숫자가 또 조금 내려갔습니다. 10월 둘째 주 전국 휘발유 평균은 리터당 1,856.6원, 스물두 주째 내림세예요. 그런데 같은 주 두바이유는 배럴당 108.6달러로 오히려 올랐습니다. 바다 건너 원유값은 100달러 위에 머무는데 동네 기름값만 반대로 가는 셈이죠. 이 엇갈림 한가운데에 넉 달째 꿈쩍하지 않는 숫자 하나, 1,784원이 있습니다.
원유는 오르는데 가격판 숫자는 내려간다

10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은 1,856.6원입니다. 한 주 전보다 0.9원 내렸어요. 경유는 1,842.8원으로 0.5원 내렸고요. 한 주에 1원도 안 되는 폭이지만 방향은 스물두 주째 한결같습니다. 늦봄부터 거의 매주 조금씩 내려온 거예요.
같은 주 국제시장은 정반대였습니다. 두바이유가 배럴당 108.6달러로 0.5달러 올랐고, 자동차용 경유도 171.2달러로 1.1달러 뛰었어요. 9월 한 달 두바이유 평균은 113.71달러였습니다. 8월 88.75달러에서 한 달 사이 28% 넘게 오른 값이에요.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902.5원으로 가장 비싸고 대구가 1,829.9원으로 가장 쌉니다. 차이는 72.6원이에요. 상표별로는 알뜰주유소가 1,846.9원으로 가장 낮았습니다. 어디서 넣든 1,800원대라는 점은 같아요.
두바이유는 108.6달러로 올랐는데 휘발유 평균은 1,856.6원으로 스물두 주째 내렸습니다.
3월 13일, 1997년 이후 한 번도 쓰지 않은 장치가 깨어났다
이야기는 봄으로 거슬러 갑니다. 중동에서 전쟁이 번지며 유가가 치솟자 정부는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꺼내 들었어요. 법에는 오래전부터 있던 제도지만,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한 번도 쓴 적이 없던 카드입니다.
여기서 오해가 하나 생깁니다. 최고가격은 주유소 판매가가 아니에요. 정유사가 주유소에 기름을 넘길 때 받을 수 있는 공급가의 상한입니다. 전국 1만 3천여 곳 주유소는 지역도 운영 방식도 제각각이라 판매가를 한 줄로 묶기 어렵다는 게 정부 설명이었어요. 그래서 상한은 한 단계 위, 정유사 출하 가격에 걸렸습니다.
첫 상한은 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이었습니다. 2주마다 다시 정하기로 했고요. 그런데 2주 뒤인 3월 27일, 상한은 오히려 210원씩 올라 휘발유 1,934원이 됐습니다. 원유값을 감당하기엔 첫 숫자가 너무 낮았던 거예요.
상한이 생겼어도 주유소 값은 계속 올랐습니다. 4월 17일 전국 휘발유 평균이 2,000원을 넘었어요. 2022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해 최고점은 6월 30일의 2,144.90원이었고, 올봄엔 그 기록마저 깨질 수 있다는 말이 돌았어요.
최고가격은 주유소 가격이 아니라 정유사가 주유소에 넘기는 공급가의 천장입니다.
6월에 한 번 내린 천장이 그 뒤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림세는 늦봄부터 시작됐지만, 확실히 방향이 굳은 건 초여름이었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면서 국제유가가 내려왔고, 정부는 6월 27일 7차 최고가격을 리터당 150원 낮췄어요.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 제도를 시작한 지 106일 만의 첫 인하였습니다. 바로 다음 날 서울 주유소 가격판에 1,800원대 숫자가 걸리기 시작했고요.
놀라운 건 그다음입니다. 8차, 9차, 10차를 거치는 동안 이 숫자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요. 그사이 갱신 주기도 2주에서 4주로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10월 16일 발표한 11차마저 똑같이 묶였죠. 11월 13일까지 그대로 가면 같은 상한이 140일 이어집니다.
기름값이 국제유가와 거꾸로 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원유가 아무리 올라도 정유사가 주유소에 넘기는 값은 1,784원 위로 못 올라갑니다. 주유소 판매가는 이 공급가에 주유소 몫이 얹혀 정해지니, 위로 튈 길이 막힌 채 아래로만 천천히 맞춰져 온 거예요. 지금 휘발유 평균과 상한의 차이는 72원 남짓입니다.
세금도 한몫합니다. 유류세 인하가 11월 30일까지 두 달 더 연장됐어요. 휘발유는 15%, 경유는 25% 낮은 세율이 그대로라, 리터당 휘발유 122원, 경유 145원이 덜 붙습니다. 상한과 세금, 두 겹으로 눌러 놓은 셈이에요.
6월 27일 정한 1,784원이 11차까지 그대로입니다. 11월 13일까지 가면 같은 상한이 140일 이어집니다.
덜 넣는 운전자, 수출길을 묻는 정유사, 그리고 11월의 세 고비
반응은 판매량에서 먼저 보입니다. 9월 휘발유 판매량은 1년 전보다 3.0% 늘었지만, 늘어난 몫의 80% 가까이가 추석 주간에 몰렸어요. 짧아진 연휴와 고속도로 주유소 할인 덕이었죠. 10월 들어 첫 두 주는 다시 5.5% 줄었습니다. 경유는 9월에만 9.0% 줄었고, 제도를 시작한 3월부터 따지면 휘발유는 1.7%, 경유는 7.6% 덜 팔렸어요. 값이 내려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껴 넣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정유사 사정은 다릅니다. 국내에서 덜 팔리고 공급가는 묶였으니, 업계는 석유제품 수출 제한을 풀어 달라고 요청했어요. 정부는 국내 수급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수출 물량을 조율해 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원유 들여오는 양은 10~11월 모두 작년 평균 이상을 확보해 두었고요.
첫째 고비는 돈입니다. 상한 때문에 정유사가 본 손실은 나랏돈으로 메워 줍니다. 정부는 시행과 함께 4조 2천억 원을 떼어 두었고,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갈 경우에 대비해 1조 5천억 원을 더 얹었어요. 시장가와 상한의 차이가 100원 벌어질 때마다 보전액이 1조 5천억 원쯤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3월 13일부터 6월 30일까지 손실은 11월 말까지 정산 가격을 확정하고, 그 뒤 몫은 분기마다 따집니다.
둘째와 셋째 고비는 날짜입니다. 11월 13일에 11차 상한이 끝나고, 11월 30일에는 유류세 인하가 끝나요. 국제유가는 보통 2~3주 늦게 주유소 가격에 닿는데, 지금 중동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배를 노린 공격과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한을 올리거나 세금 인하를 거두는 순간, 스물두 주 동안 쌓인 내림세가 한꺼번에 되돌아올 수 있어요. 11월 중순 12차 발표가 가격판의 다음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11월 13일 상한 종료, 11월 30일 유류세 인하 종료. 두 날짜가 겨울 기름값을 가릅니다.
핵심만 다시 보기
- 10월 둘째 주 휘발유 평균은 1,856.6원으로 22주 연속 내렸고, 같은 주 두바이유는 108.6달러로 올랐습니다.
- 석유 최고가격은 주유소 판매가가 아니라 정유사 공급가의 상한입니다. 3월 13일 처음 발동했습니다.
- 6월 27일 150원 내린 휘발유 1,784원이 11차(10월 17일~11월 13일)까지 그대로 묶였습니다.
- 유류세 인하도 11월 30일까지 연장돼 휘발유는 리터당 122원, 경유는 145원이 덜 붙습니다.
- 정유사 손실은 재정으로 보전하며, 첫 정산 가격은 11월 말까지 확정할 예정입니다.
가격판 숫자가 내려가는 동안에도 원유값은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1,800원대는 시장이 아니라 상한과 세금이 함께 만든 값이에요. 11월 중순 12차 최고가격 발표와 월말 유류세 결정, 이 두 소식이 나오는 주에는 가격판을 한 번 더 올려다볼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