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공항에서 여권 도장이 사라진 지 반년 — 2016년 제안서에서 ETIAS 직전까지, 유럽 입국이 바뀌어 온 순서
연말에 파리나 로마행 표를 끊어 둔 사람이라면 여권 맨 뒷장을 한 번 펴 보세요. 지난번 여행에서 받은 입국 도장이 마지막 도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올해 4월 10일부터 유럽 29개국 국경은 도장을 찍지 않고 얼굴 사진과 지문으로 드나든 날을 기록하거든요.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았습니다. 처음 제안서가 나온 날부터 다음 차례인 ETIAS까지, 날짜순으로 따라가 봅니다.
처음엔 '도장을 기계로 바꾸자'는 제안서 한 장이었다

출발점은 2016년 4월 6일입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국경 관리를 손보는 묶음 제안을 내면서 그 안에 출입국 기록 시스템, 곧 EES를 넣었습니다. 생각은 단순했어요. 비EU 여행자가 언제 들어와 언제 나갔는지를 여권 도장 대신 전산으로 남기자는 겁니다.
도장 방식에는 오래된 약점이 있었습니다. 유럽에 무비자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180일 가운데 90일인데, 이걸 확인하려면 국경 직원이 도장을 한 장씩 넘겨 가며 날짜를 세야 했어요. 도장이 번지거나 빠지면 셀 방법도 없었고요. 기간을 넘겨 눌러앉은 사람을 걸러 내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의회와 회원국 협상은 2017년 7월에 끝났고, 규정은 그해 11월 20일 채택돼 12월 29일 효력이 생겼습니다. 법은 이때 이미 다 만들어진 셈이에요. 문제는 그걸 실제로 돌릴 시스템이었습니다.
법은 2017년에 끝났다. 그 뒤 8년은 시스템을 실제로 켜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날짜를 받아 놓고도 세 나라가 손을 들면서 또 밀렸다
EES 가동일은 여러 번 잡혔다가 미뤄졌습니다. 가장 크게 어긋난 게 2024년 11월 10일입니다. 날짜까지 정해 놓고 한 달을 남긴 10월, 독일·프랑스·네덜란드가 국경 전산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알렸어요. 파리·암스테르담·프랑크푸르트 같은 큰 공항을 끼고 있어서, 이 세 나라가 EES 대상 여객의 40% 남짓을 맡고 있었습니다. 셋이 빠지면 시작하는 의미가 없었죠.
그래서 방식을 바꿨습니다. 29개국이 같은 날 한꺼번에 켜는 대신 조금씩 늘려 가기로 한 거예요. 집행위가 2024년 12월 4일 단계적 시작안을 냈고, 2025년 5월 19일 의회와 이사회가 합의했습니다. 규정은 7월 18일 채택돼 7월 26일 발효됐고, 나흘 뒤인 7월 30일 시작일이 2025년 10월 12일로 잡혔습니다.
10월 12일부터 반년 동안은 도장과 EES가 함께 쓰였습니다. 일부 국경에서만 먼저 얼굴과 지문을 받고, 나머지는 그대로 도장을 찍는 식이었어요. 그 사이에 유럽에 다녀온 사람은 어디서는 사진을 찍고 어디서는 도장을 받는 어수선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2024년 11월 '한날 동시 가동'이 무산되자, 유럽은 반년에 걸쳐 조금씩 켜는 쪽을 골랐다.
4월 10일 도장이 사라졌고, 여름엔 입국 줄이 길어졌다

2026년 4월 10일, EES가 전면 가동됐습니다. 이날부터 유럽 29개국 외부 국경에서는 비EU 여행자 여권에 도장을 찍지 않습니다. 한국 여권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처음 통과할 때 여권 정보와 함께 얼굴 사진을 찍고 지문을 남기는데, 12세 미만 아이는 지문을 받지 않습니다. 한 번 등록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본인 확인만 하고 지나갑니다.
등록 정보는 3년 동안 남습니다. 그 안에 다시 가면 셀프 단말기를 쓸 수 있는 국경도 있고, 일부 나라에서는 'Travel to Europe' 앱으로 미리 정보를 넣어 둘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단말기와 앱은 나라마다, 공항마다 갖춰진 정도가 다릅니다.
처음 겪는 여름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첫 등록에 사람마다 시간이 더 들다 보니 일부 국경에서는 대기가 다섯 시간까지 늘어났어요. 유럽 공항 업계는 성수기 동안만이라도 시스템을 멈춰 달라고 집행위원회에 공개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여권 도장이 없어졌다고 줄이 짧아졌으리라 기대하면 안 됩니다. 첫 입국이라면 환승 시간을 넉넉히 잡아 두는 편이 낫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90일 계산을 EES가 대신 해 준다고 해서 여행자가 손을 놓아도 되는 건 아닙니다. 기간을 넘기면 기록이 그대로 남으니, 긴 일정이라면 들어간 날과 나올 날을 스스로 세어 두는 게 안전합니다.
도장은 없어졌지만 첫 입국 등록 때문에 줄은 오히려 길어질 수 있다.
다음 차례는 ETIAS, 날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EES가 '들어오고 나간 기록'이라면, ETIAS는 '떠나기 전에 받는 허가'입니다. 미국 갈 때 받는 ESTA와 같은 성격이에요. 한국처럼 비자 없이 유럽에 가는 나라 국민은 ETIAS가 시작되면 출발 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시작 시점은 2026년 4분기로 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10월 말인 지금까지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았어요. 유럽연합은 시작일을 몇 달 앞두고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올해 안에 떠나는 여행이라면 아직은 신청할 게 없습니다. 지금 'ETIAS 신청'이라며 돈을 받는 사이트가 있다면 공식 창구가 아닙니다.
수수료는 처음 법에 적힌 7유로에서 20유로로 오릅니다. 2018년 이후 물가와 늘어난 운영비를 반영하겠다며 집행위가 2025년 7월 인상을 결정했고, 시스템이 문을 여는 날부터 이 금액이 적용됩니다. 18세 미만과 70세 이상은 내지 않습니다. 한 번 받으면 3년, 또는 신청할 때 쓴 여권이 만료될 때까지 씁니다.
심사는 대부분 몇 분이면 끝납니다. 늦어지면 4일 안에 결과를 주고, 서류를 더 내라고 하면 최대 14일, 면접까지 가면 최대 30일이 걸릴 수 있습니다. 시작일이 발표되면, 출국 직전이 아니라 표를 끊는 날 같이 신청해 두는 게 마음 편합니다.
ETIAS는 2026년 4분기 예정이지만 날짜는 아직 없다. 지금 돈을 받는 'ETIAS 신청' 사이트는 공식이 아니다.
핵심만 다시 보기
- EES는 2016년 4월 제안, 2017년 11월 규정 채택으로 법은 일찍 갖춰졌지만 가동까지 8년이 더 걸렸습니다.
- 2024년 11월 10일 가동이 독일·프랑스·네덜란드의 준비 부족으로 무산된 뒤, 2025년 10월 12일부터 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켰습니다.
- 2026년 4월 10일부터 유럽 29개국 외부 국경에서 여권 도장이 사라지고 얼굴·지문 등록으로 바뀌었습니다. 12세 미만은 지문을 받지 않습니다.
- 다음 차례인 ETIAS는 2026년 4분기 시작 예정이지만 날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수수료는 20유로, 18세 미만과 70세 이상은 면제입니다.
- 첫 입국 등록 때문에 대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환승 시간을 넉넉히 잡고, 90일 체류 기간은 스스로도 세어 두는 게 안전합니다.
도장 한 칸을 전산 기록으로 바꾸는 데 10년이 걸렸고, 그 마지막 조각인 ETIAS는 아직 날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말이나 내년 봄 유럽 일정을 잡아 두었다면 지금 할 일은 여권 만료일을 확인하는 것 정도입니다. ETIAS 시작일이 발표되면 그때 신청 순서를 다시 짚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