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zaar and Beyond: A Portrait of Lillian Bassman, 2026 | From the Vaults · The Met

공개  2026년 7월 23일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공식 채널길이  5분 10초연작  From the Vaults — 메트가 보관고에서 꺼내 올리는 필름목소리  릴리언 배스먼 (1917~2012) 본인 녹음관련 전시  2026년 3월 2일~7월 26일 · 5번가 852 갤러리 (종료)

암실 대목에서 배스먼은 도구를 하나씩 셉니다. 물, 표백제, 붓, 솜, 그리고 엄지손가락. 패션 사진을 찍던 사람이 다 찍은 사진을 문지르고 흐리게 만드는 데 쓴 목록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지난달 말에 올린 5분 10초짜리 필름은 그 손을 따라갑니다. 해설자도 전문가 인터뷰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스먼 본인의 목소리만 흐릅니다.

해설자 없이 목소리 하나로 갑니다

붉은 등이 켜진 암실에서 인화지를 담근 트레이와 붓, 집게가 놓인 작업대를 그린 수채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유튜브에는 'From the Vaults' 라는 이름이 붙은 줄이 있습니다. 보관고에서 꺼낸 필름을 한 편씩 올리는 자리입니다. 1967년 헬렌 프랑켄탈러의 작업실을 담은 필름도, 1983년 옴스테드와 센트럴파크를 다룬 필름도 여기 걸려 있습니다. 지난달 말 그 줄에 5분 10초짜리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건 오래된 인화지와 콜라주, 그리고 지면을 미리 짜 보려고 만든 마케트입니다. 그 위로 목소리가 하나 흐릅니다. 릴리언 배스먼이 뉴욕 자택 스튜디오에서 남긴 녹음입니다. 진행자도 없고 설명 자막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앞뒤 없이 툭툭 던지고, 화면은 그 말에 맞는 사진을 조용히 받쳐 줍니다. 영어 자막이 달려 있으니 말이 빠르다 싶으면 켜 놓고 보면 됩니다.

설명을 듣는 5분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말투에 익숙해지는 5분입니다.

스물넷에 바자 편집실로 들어갔습니다

펼쳐진 잡지 지면과 종이 조각, 가위, 자, 색연필, 흑백 사진 몇 장이 놓인 옛 편집실 책상을 그린 수채화

배스먼은 1917년에 태어나 브롱크스에서 자랐습니다. 러시아에서 건너온 예술가들 틈이었습니다. 10대에는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누드 모델을 섰고, 공공 사업으로 그리던 벽화 작업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1940년에 알렉세이 브로도비치를 만납니다. 하퍼스 바자의 아트디렉터였고, 뉴 스쿨에서 디자인 수업을 열고 있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본 브로도비치가 자기 세미나에 자리를 내줬고, 이듬해 스물넷의 배스먼은 바자에 디자인 일자리를 얻습니다.

편집실에는 카멜 스노와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있었습니다. 굵은 활자, 넓은 여백, 두 면에 걸쳐 흐르는 사진. 지금 잡지 지면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문법이 그 방에서 만들어졌습니다.

1945년부터 세 해는 10대 독자용 스핀오프인 주니어 바자의 아트디렉터를 맡습니다. 영상에서도 이 대목을 본인이 짚습니다. 젊고 들뜬 기분을 글자로 설명하지 않고 지면 자체로 전하는 법을 그때 익혔다고요. 리처드 아베돈이 처음 일감을 받은 곳도 이 지면입니다.

옷이 잘 안 보이는 쪽으로 갔습니다

어느 날 사진을 직접 찍어 보기로 합니다. 지면을 짜 왔으니 자연스러운 순서였다고 말합니다. 첫 일은 란제리 화보였습니다.

그때 에이전시들은 소속 모델이 란제리 촬영에 나서는 걸 꺼렸습니다. 그래서 배스먼과 모델들은 둘 사이에만 통하는 방식을 만듭니다. 이목구비만 드러나지 않으면 몸과 몸짓은 다 내주기로 한 겁니다. 패션 사진은 몰랐지만 여자는 알았다고, 본인은 그 시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촬영장에서는 카메라 앞 종이 위로 올라가 맨발로 춤을 췄습니다. 원하는 움직임을 말로 지시하는 대신 직접 보여 준 겁니다. 좋아한 모델들을 꼽는 기준도 얼굴이 아니라 움직이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암실에서 벌어집니다. 물과 표백제, 붓, 솜, 그리고 엄지손가락. 인화지를 문지르고 덮으면서 옷의 윤곽만 남기고 세부를 흐려 놓습니다. 암실 일이 그림 그리는 것과 같았다고, 사진 한 장은 끝없이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1950년에 이런 사진을 내놓기 시작했을 때는 패션 사진이 위험해진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옷을 보여 주려는 사진에서 옷을 지우는 쪽으로 갔습니다. 남는 건 실루엣과 손짓뿐인데, 그게 오히려 옷을 걸친 감각에 가깝습니다.

전시는 지난달 닫혔고, 필름은 남았습니다

이 필름은 혼자 나온 게 아닙니다. 메트는 올해 3월 2일부터 7월 26일까지 5번가 852 갤러리에서 'Lillian Bassman: Bazaar and Beyond' 를 열었습니다. 지면 디자인과 화보, 암실 실험을 60점 넘게 걸었고, 유족이 기증한 70점이 그 뼈대가 됐습니다. 큐레이터는 사진부의 버지니아 맥브라이드입니다.

필름이 올라온 날은 7월 23일, 전시가 문을 닫기 사흘 전입니다. 전시장을 못 본 사람에게는 이 5분이 남은 전부인 셈인데, 아쉬운 대체재로만 보기에는 담긴 게 적지 않습니다.

전시가 붙잡은 대목 하나는 1990년대입니다. 배스먼은 패션 사진 판을 떠나 있다가 그 무렵 자기 아카이브로 돌아갑니다. 초기 네거티브를 다시 찾아내 예전보다 더 추상적으로 인화했고, 그 후기작이 반세기 뒤 사람들에게 통했습니다. 위험하다는 말을 듣던 감각이 그제야 제때를 만난 겁니다.

필름 앞머리에는 이 미술관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편이자 사진가였던 폴 히멜과 주말마다 메트에 왔고, 패션을 배운 곳이 학교가 아니라 여기 전시실이었다고요. 그림 몇 점만 보면 옷 한 벌을 통째로 지어낼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렇게 배운 사람의 작업이 다시 이 건물에 걸렸다가 나간 겁니다.

영상에서 볼 만한 곳

  • 0분 58초~1분 27초 — 주말마다 메트에 다니며 그림에서 옷을 배웠다는 대목. 시각적인 교육을 통째로 여기서 받았다고 말합니다.
  • 1분 55초~2분 06초 — 자기가 짠 지면이 갈기갈기 찢긴 적도 있다는 이야기. 그러고는 늘 다시 붙었다고 덧붙입니다.
  • 3분 07초~3분 42초 — 란제리 화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모델들과 몸짓의 언어를 따로 만들어 간 과정.
  • 3분 49초~4분 12초 — 카메라 앞 종이 위에서 맨발로 춤추며 원하는 움직임을 직접 보여 줬다는 장면.
  • 4분 13초~4분 35초 — 물, 표백제, 붓, 솜, 엄지손가락. 암실 일을 그림에 비유하는 대목입니다.

5분은 짧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면 배스먼의 사진이 흐릿하게 찍힌 사진이 아니라 흐리게 만든 사진으로 보입니다. 그 차이 하나 때문에 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