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성 비행 영상은 찍은 게 아닙니다 — 460km 구덩이 위를 도는 4분을 보기 전에
Fly around Schiaparelli Crater with Mars Express · European Space Agency, ESA
붉은 벌판이 아래로 흘러가고, 지평선 끝에서 완만한 테두리가 천천히 솟아오릅니다. 유럽우주국이 지난주에 올린 4분 남짓한 화성 비행 영상입니다. 소리를 키우고 그냥 틀어 두어도 4분은 잘 지나갑니다. 다만 이 영상은 보는 사람이 두 가지를 이미 안다고 치고 시작합니다. 하나는 저 화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고, 다른 하나는 저 구덩이에 왜 그 이름이 붙었는가입니다.
먼저, 이 화면은 카메라로 찍은 게 아닙니다

화면만 보면 탐사선이 캠코더를 들고 저공비행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마스 익스프레스는 화성 궤도를 돌 뿐이고, 저 각도까지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저건 촬영본이 아니라 세워 올린 화면입니다.
재료는 HRSC라는 고해상도 스테레오 카메라가 여러 차례에 걸쳐 찍어 둔 사진 모자이크입니다. 스테레오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같은 땅을 각도를 달리해 찍어 두면 거기서 높낮이를 뽑아낼 수 있고, 그 높낮이를 모아 디지털 지형 모델을 만듭니다. 그 입체 지형 위에 사진을 덮으면 삼차원 풍경이 됩니다.
그 풍경 안에 카메라가 지나갈 길을 미리 그려 두고, 영상 1초마다 50장씩 따로 그려 붙인 결과가 이 4분입니다. HRSC를 굴리는 곳은 독일항공우주센터고,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은 베를린자유대 행성과학·원격탐사 연구팀이 맡습니다.
그래서 꼭 하나 기억해 둘 숫자가 있습니다. 높이를 3배로 부풀렸습니다. 화면에서 험해 보이는 경사는 실제로 그 3분의 1쯤 되는 완만한 지형입니다. 멀리 깔리는 안개와 구름도 실제 대기 사진이 아니라 나중에 얹은 것입니다. 지형 모델은 250km 바깥에서 데이터가 끊기는데, 그 끊긴 자리를 가리려고 그 지점부터 뿌옇게 만듭니다.
높이는 3배로 부풀렸고, 먼 곳의 안개는 나중에 얹었습니다. 눈에 험해 보이는 만큼 실제가 험하지는 않습니다.
이름을 남긴 사람은 화성인 소동을 부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구덩이의 이름은 이탈리아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에게서 왔습니다. 1835년에 나서 1910년에 세상을 떴고, 수성과 금성도 관측했지만 이름이 오래 남은 쪽은 화성입니다.
1877년은 화성이 지구 가까이 붙는 이른바 대접근의 해였습니다. 스키아파렐리는 그해 밀라노에서 화성 표면을 지도로 옮겼습니다. 붉은 바탕을 가로지르는 곧고 어두운 선들이 여럿 보였고, 그는 그것을 이탈리아어로 카날리라고 적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자연 수로라는 뜻으로 쓴 말입니다.
일이 꼬인 건 그다음입니다. 영어권에서 이 단어가 canals로 옮겨졌습니다. 영어 canal은 사람이 판 운하입니다. 농사에 물을 대고 배를 띄우려고 판 인공 물길이지요. 그러니 문장은 이렇게 읽히기 시작합니다. 화성 표면에 곧게 뻗은 운하가 수십 개 있다. 몇몇 천문학자와,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물길을 판 지적 존재를 상상했습니다.
지금은 정리가 끝났습니다. 그 선들은 당시 망원경 성능이 만들어 낸 착시였고, 오늘날 화성에 물이 흐르는 수로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완전히 끝나지는 않습니다. 물이 아예 없었느냐 하면 그건 다른 문제고, 그 답의 일부가 바로 이 크레이터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이탈리아어 카날리는 자연 수로였고 영어 canal은 사람이 판 운하였습니다. 단어 하나가 반세기 넘게 화성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460km짜리 구덩이가 얕다는 게 진짜 볼거리입니다
스키아파렐리 크레이터는 지름이 460km입니다. 화성 지름이 6,780km쯤 되니, 행성 지름의 15분의 1에 가까운 자국이 표면에 찍혀 있는 셈입니다. 화성에서 가장 큰 충돌 자국 축에 듭니다.
그런데 얕습니다. 이만한 것이 부딪혀 파인 자리라면 훨씬 깊어야 맞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수십억 년 동안 안쪽이 메워졌다고 봅니다. 바람이 실어 나른 모래일 수도 있고, 물이 남기고 간 퇴적물일 수도 있고, 흘러들어 굳은 용암일 수도 있습니다. 셋 중 하나를 고를 문제가 아니라 셋이 겹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닥에는 어두운 퇴적층이 깔려 있습니다. 지구에서 호수가 말라붙은 자리에 남는 것과 생김새가 닮았습니다. 분지 안쪽에 난 작은 구덩이들 가운데는 한때 물에 잠겼다가 그대로 메워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이 지역에 한동안 물이 고여 있었으리라고 보는 근거입니다.
테두리 안쪽에는 지름 42km짜리 크레이터가 하나 박혀 있습니다. 그 안이 또 한 겹 이야기입니다. 북쪽에는 퇴적물이 계단처럼 층져 있고, 가운데 가까이에는 삼각주를 닮은 구조가 있습니다. 남쪽에는 바람이 실어 온 어두운 물질이 쌓였습니다. 물이 흘러들던 자리와 바람이 쓸고 간 자리가 한 구덩이 안에 나란히 남아 있는 셈입니다.
충돌 자국 하나가 아니라, 그 위에 바람과 물과 용암이 수십억 년 동안 겹쳐 쓴 자리입니다.
소설 마션에서 마크 와트니가 향하던 곳이 여기입니다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목적지가 이 크레이터입니다. 유럽우주국도 영상 설명에 그 대목을 적어 두었습니다. 책을 읽었거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화면을 보는 마음이 조금 달라집니다. 주인공이 로버를 몰고 몇 주에 걸쳐 건너가려던 그 벌판이 지금 아래로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화면을 만들어 낸 탐사선 이야기도 해 둘 만합니다. 마스 익스프레스는 2003년 6월 2일에 올라가 그해 12월 화성에 닿았습니다. 발사 질량 1,120kg에 기기 여덟 개를 실었고, 스무 해가 넘은 지금도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유럽이 화성에 보낸 탐사선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축입니다.
오래 도는 게 왜 중요하냐면, 같은 땅을 여러 번 다른 각도로 찍을 수 있어서입니다. 스키아파렐리를 담은 사진 가운데는 2010년 7월에 찍은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관측이 지형 모델의 밀도를 올리고, 그 밀도가 이런 비행 화면의 해상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 4분은 한 번의 촬영이 아닙니다. 스무 해 넘게 같은 자리를 지나며 조금씩 모은 높낮이 데이터를 한 번에 풀어 놓은 것입니다.
스무 해 넘게 같은 자리를 지나며 모은 높낮이 데이터가, 4분짜리 비행 한 편으로 풀려 나옵니다.
영상에서 볼 만한 곳
- 지형의 높낮이 — 3배로 부풀린 화면입니다. 험해 보이는 경사를 머릿속에서 3분의 1로 낮춰 보면 그게 실제 화성의 완만함입니다.
- 지평선 쪽 뿌연 기운 — 화성 대기를 찍은 게 아닙니다. 지형 모델이 250km 바깥에서 끊기는 걸 가리려고 나중에 얹은 안개와 구름입니다.
- 바닥에 깔린 어두운 얼룩 — 지구에서 호수가 마른 자리에 남는 퇴적물과 닮았습니다. 이 지역에 물이 고여 있었으리라고 보는 근거입니다.
- 절반쯤 지나면 비행이 끝납니다 — 마스 익스프레스가 화성을 도는 장면과, 이런 영상을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하는 애니메이션이 이어집니다.
- 소리 — 유럽우주국이 오디오 가이드를 얹어 두었습니다. 볼륨을 올리고 보라고 안내하는 영상입니다.
그냥 틀어도 4분은 잘 지나갑니다. 다만 두 가지를 알고 보면 화면이 달라집니다. 높이가 3배로 부풀려져 있다는 것, 그리고 저 이름이 단어 하나 때문에 화성에 문명을 앉혀 놓은 사람의 것이라는 것. 그 둘을 쥐고 보면 이 4분은 풍경이 아니라 기록으로 읽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