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이 된 엔하이픈, 6년 연표 위에 Bloody Paradise를 올려놓아 봤습니다
ENHYPEN (엔하이픈) 'Bloody Paradise' Official MV · HYBE LABELS
이번 주에 숫자가 유난히 빨리 오르는 곡이 하나 있습니다. 엔하이픈의 Bloody Paradise예요. 뮤직비디오가 올라온 게 지난 금요일 밤 자정 무렵인데, 나흘 만에 2,500만 회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숫자보다 놓인 자리가 더 눈에 걸려요. 일곱이던 팀이 여섯이 된 뒤 처음 내놓은 앨범의 타이틀곡이거든요. 그래서 곡 하나만 떼어 듣는 대신 데뷔부터 지금까지를 순서대로 늘어놓고, 이 곡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봤습니다.
출발점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였습니다
엔하이픈의 시작은 2020년 여름입니다. 6월 26일부터 9월 18일까지 방송한 아이랜드가 끝나면서 일곱 명이 정해졌어요. 오디션에서 뽑힌 팀이라 데뷔 전부터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습니다. 보통은 데뷔가 첫 소개인데, 이쪽은 소개가 먼저 끝나 있었죠.
정식 데뷔는 그해 11월 30일입니다. 첫 EP가 BORDER : DAY ONE이었고 타이틀곡이 Given-Taken이었어요. 제목부터 주고받는다는 말인데, 방송에서 받은 기회와 그에 딸린 부담을 그대로 가져다 쓴 곡입니다. 뱀파이어와 경계라는 소재도 여기서 이미 꺼내 놨어요. 지금 THE SIN 시리즈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의 첫 장이 데뷔곡이었던 셈입니다.
재미있는 건 숫자입니다. Given-Taken 뮤직비디오는 오늘 기준 9,600만 회 근처예요. 6년 가까이 쌓아 온 숫자인데 아직 1억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위에 걸어 둔 신곡은 나흘 만에 2,500만을 지났고요. 같은 팀의 첫 곡과 최신 곡이 숫자를 쌓는 속도가 이만큼 벌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룹은 잘 알려진 채로 출발했지만, 넓게 퍼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 쪽입니다. 다음 이야기가 그 시간에 대한 겁니다.
데뷔곡이 6년 가까이 걸려 쌓은 숫자를, 지금은 며칠 단위로 쌓습니다.
1위와 밀리언과 빌보드가 차례로 붙었습니다
첫 매듭은 데뷔 다섯 달 뒤에 지어집니다. 2021년 5월 4일 더쇼에서 Drunk-Dazed로 처음 음악방송 1위를 했어요. 이 곡이 실린 BORDER : CARNIVAL이 그해 4월에 나왔으니, 컴백하고 일주일 남짓 만에 트로피를 가져간 겁니다.
그해 10월에는 정규 1집 DIMENSION : DILEMMA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앨범 판매가 100만 장을 넘겼고, 빌보드 200에도 11위로 들어갔어요. 국내 1위와 해외 지표가 같은 해에 붙은 셈입니다.
폭이 크게 벌어진 건 2023년입니다. 5월에 낸 DARK BLOOD가 빌보드 200 4위에 올랐어요. 그때까지 이 팀이 받아 본 적 없는 자리였습니다. 타이틀곡 Bite Me는 지금 2억 회를 넘겨서 엔하이픈 뮤직비디오 중 가장 많이 돌아간 곡이고요.
그다음 해에 한 칸 더 올라갑니다. 2024년 7월에 나온 정규 2집 ROMANCE : UNTOLD가 빌보드 200 2위로 진입했어요. 타이틀곡은 XO (Only If You Say Yes)였습니다. 데뷔 4년 만에 미국 앨범 차트 2위까지 온 건데, 앞선 기록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튀어 오른 게 아니라 한 계단씩 올라온 모양입니다.
정리하면 데뷔부터 2024년까지는 계속 위로 향하던 구간이에요. 그래서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빌보드 200 성적이 11위에서 4위로, 다시 2위로 올라왔습니다. 튀어 오른 게 아니라 한 계단씩이었어요.
일곱이 여섯이 되고, 일정은 그대로 굴러갔습니다
올해 1월 16일에 미니 7집 THE SIN : VANISH가 나왔습니다. 타이틀곡은 Knife였고 어두운 트랩 계열이었어요. 죄를 소재로 삼은 THE SIN 시리즈의 첫 장이었고, 인간과 뱀파이어가 함께 사는 세계에서 금기를 깨고 달아나는 연인의 이야기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3월 10일에 소속사가 희승의 팀 탈퇴를 알렸습니다. 음악 방향이 뚜렷해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어요. 회사에는 남아 솔로로 활동한다고 했습니다. 남은 여섯 명은 정원, 제이, 제이크, 성훈, 선우, 니키고요. 데뷔조가 그대로 유지되던 5년여가 여기서 한 번 끊깁니다.
그런데 일정표는 멈추지 않았어요. 5월 1일부터 3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네 번째 월드투어 BLOOD SAGA가 시작했습니다. 21개 도시를 도는 일정이고, 남미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팀 구성이 바뀌고 두 달도 안 돼서 가장 긴 투어를 열었다는 뜻이에요.
지난주에는 오래된 곡 하나가 선을 넘었습니다. 8월 20일에 No Doubt 뮤직비디오가 1억 회를 넘겼어요. 2024년 11월에 나온 리패키지 ROMANCE : UNTOLD -daydream-의 타이틀곡입니다. 엔하이픈 뮤직비디오 중 1억을 넘긴 네 번째 곡이 됐고, 앞선 셋은 Bite Me와 Drunk-Dazed와 FEVER입니다.
새 앨범은 그 이틀 뒤에 나왔습니다.
구성이 바뀌고 두 달도 안 돼 가장 긴 투어를 열었습니다. 21개 도시를 돌고, 남미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이 곡은 연표의 어디쯤에 서 있나
미니 8집 THE SIN : BLISS는 8월 21일 오후 1시에 나왔고, 뮤직비디오는 다음 날 0시에 걸렸습니다. 여섯 명이 된 뒤 처음 낸 앨범이에요.
타이틀곡 Bloody Paradise는 브라질 펑키를 바탕에 깔고 두꺼운 킥을 얹은 곡입니다. 프로듀서는 JULiA LEWiS고요. 일곱 달 전 Knife가 어두운 트랩이었던 걸 떠올리면 방향을 꽤 크게 튼 셈입니다. 같은 시리즈의 1부와 2부인데 리듬 계열이 아예 다릅니다. 이야기는 이어지고 소리만 갈아 끼운 구조예요.
뮤직비디오는 일부를 페루에서 찍었습니다. 색이 진하고 화면이 옛날 필름 쪽으로 기울어 있어요. 뱀파이어와 유럽식 성이라는 그림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볕으로 무대를 옮긴 겁니다. 앨범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네 나라 말로 내레이션이 붙었고 배우 박정민과 츠다 켄지로, 라스 황이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이야기의 자리도 정해져 있습니다. 1월 앨범이 금기를 깨고 달아나는 장면이었다면, 이번은 달아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찾은 자유 쪽이에요.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라 제목에 낙원과 피가 같이 붙었습니다.
반응은 첫날부터 나왔습니다. 발매 당일에만 177만 장이 나갔고,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에서는 브라질과 일본을 포함해 23개 나라와 지역에서 1위를 했어요. 곡 자체를 두고 하는 평가는 아직 이르지만, 팀이 바뀐 뒤에도 규모가 줄지 않았다는 건 이 숫자로 확인됩니다.
마지막으로 길이를 하나 짚어 두고 싶습니다. 뮤직비디오가 2분 14초에서 끝나요. 6년 전 데뷔곡이 세계관을 설명하느라 시간을 넉넉히 썼던 걸 생각하면 대비가 큽니다. 이제는 설명을 앞에 깔지 않아요.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있으니 곧바로 장면부터 던지고 시작합니다. 연표 위에서 이 곡이 서 있는 자리는 거기입니다.
이야기는 1월과 이어지는데 리듬은 갈아 끼웠습니다. 트랩에서 브라질 펑키로 건너왔어요.
이렇게 들으면 더 재미있다
- Knife를 먼저 듣고 이 곡으로 넘어와 보세요. 같은 시리즈의 1부와 2부인데 소리의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걸 알고 들으면 그 낙차가 더 크게 들려요.
- 뮤직비디오는 배경만 따라가 보는 것도 좋습니다. 페루에서 찍은 화면이라 뱀파이어 이야기에 흔히 붙는 어두운 성 대신 볕과 흙색이 나옵니다. 노래의 리듬이 어디서 왔는지가 화면에 그대로 있어요.
- 데뷔곡 Given-Taken과 붙여 들으면 6년이 한 번에 지나갑니다. 한쪽은 세계관을 설명하며 시작하고, 이쪽은 설명 없이 장면부터 던집니다.
- 귀에 걸리는 건 결국 킥입니다. 후렴에서 드럼이 얼마나 앞으로 나와 있는지 한번 재 보세요. 목소리보다 리듬이 먼저 들리게 짜 둔 곡입니다.
연표를 만들어 놓고 보니 이 팀은 한 번도 같은 자리에서 두 번 출발한 적이 없습니다. 오디션에서 시작했고, 한 계단씩 올라갔고, 올해는 사람이 한 명 줄었어요. 그 뒤에 나온 첫 곡이 위에 걸어 둔 2분 14초입니다. 한 번 돌려 보시고, 후렴에서 드럼이 목소리보다 앞에 나와 있는지만 확인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