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2026년 궁금한글 3회차_우리가 아는 한글, 우리가 몰랐던 한글날 · 국립한글박물관

첫 기념식  1926년 11월 4일그날의 이름  가갸날한글날로 개칭  1928년10월 9일 첫 기념식  1945년올해  반포 580돌 · 기념일 100돌

국립한글박물관 유튜브에 30분짜리 강연이 하나 올라와 있다. 별마당 도서관에서 열린 자리를 그대로 담은 영상인데, 첫 마디가 올해가 한글날을 제정한 지 100년 되는 해라는 말이다. 100년이면 시작점이 1926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해 기념식이 열린 날은 10월 9일이 아니었다. 강연에 나오는 연도와 날짜를 나오는 순서대로 기록과 맞춰 봤다.

100년의 첫 칸은 10월이 아니라 11월에 찍혀 있다

강연은 시작하자마자 올해가 한글날 제정 100년이라고 못박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1926년이다. 그해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함께 기념식을 열었고, 수백 명이 식도원이라는 요릿집에 모였다. 그날이 달력으로 11월 4일이다.

왜 11월이냐면 음력을 썼기 때문이다. 그날이 음력 9월 29일이었다. 훈민정음이 음력 9월에 완성됐다는 기록은 있는데 며칠인지가 없으니, 9월 안에서 가장 늦은 날을 잡아 반포일로 삼았다.

기록이라는 건 세종실록의 두 대목이다. 세종 25년 12월, 그러니까 1443년 기사에 임금이 친히 언문 스물여덟 자를 지었다는 문장이 있다. 그로부터 세 해 뒤인 세종 28년 9월, 1446년 기사는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로 시작해 세종의 어제와 정인지의 서문을 통째로 싣는다.

강연은 이 3년을 만들어 놓고 시험한 기간으로 읽는다. 1443년이 시제품이 나온 해라면 1446년은 완제품이 세상에 나온 해라는 것이다. 기념일이 뒤엣것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 있다.

480돌을 기념한 것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스무 해만 더 기다리면 500돌인데 굳이 480돌에 판을 벌였다. 480은 60을 여덟 번 곱한 수, 곧 여덟 회갑이다. 지금 감각으로 100년을 세는 것만큼 큰 매듭이었던 셈이다. 그 셈법을 오늘로 옮기면 2026년은 반포 580돌이면서 동시에 기념일 100돌이 된다.

1926년 11월 4일, 음력 9월 29일. 한글날 100년의 첫 칸은 11월에 찍혀 있다.

그날 붙은 이름은 한글날이 아니라 가갸날이었다

이름도 그 자리에서 정해졌다. 기념식이 진행되는 중에 이날을 뭐라고 부를지 의논이 나왔고, 결론이 가갸날이었다.

그때는 글자를 배울 때 가갸거겨 고교구규 하면서 익혔다. 사람들 입에 붙은 말이 그쪽이었다. 한글이라는 말은 아직 널리 퍼지기 전이라, 기념식 이름으로는 더 친숙한 쪽을 골랐다.

가갸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해 뒤인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을 바꿨다. 국회기록보존소도 한글날이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쓰기 시작한 해를 1928년으로 적어 두고 있다. 다만 신문 지면에서는 그 뒤로도 한동안 가갸날이라는 말이 그대로 돌았다.

그러니까 한글날 100년은 이름이 한 번 갈린 100년이다. 강연 제목에 붙은 우리가 몰랐던 한글날이라는 말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첫 이름은 가갸날. 한글날로 바뀐 건 두 해 뒤인 1928년이다.

10월 9일은 1940년에 안동에서 나온 책 한 권이 정했다

음력으로 지내니 기념일이 해마다 옮겨 다녔다. 1931년 무렵 이게 불편하다는 말이 나왔고, 1446년 음력 9월 29일이 양력으로 며칠인지를 계산하게 됐다. 그렇게 나온 날이 10월 29일이다.

그런데 계산 자체를 두고 논란이 붙었다.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한 값이라는 지적이었다. 양력은 1582년부터 그레고리력으로 바뀌었으니 그 기준으로 다시 재는 게 맞다는 데 의견이 모였고, 새로 나온 날짜가 10월 28일이다. 1934년부터는 이 날에 기념식을 열었다.

판을 바꾼 건 1940년 7월 안동에서 나온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정인지가 쓴 서문 끝에 9월 상한이라는 두 글자가 붙어 있었다. 상한은 상순이다. 9월 어느 날이라고만 알던 것이 9월 1일에서 10일 사이로 좁혀졌다.

앞서 9월의 마지막 날을 골랐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잡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했다. 그 값이 10월 9일이다. 광복이 오고 두 달 뒤인 1945년 10월 9일에 이 날짜로 첫 기념식이 열렸다.

날짜를 정해 준 그 책은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가 됐고, 지금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있다.

음력 9월 29일에서 10월 29일로, 다시 10월 28일을 거쳐 10월 9일까지. 날짜는 네 번 바뀌었다.

국경일이면서 쉬는 날인 상태는 2013년에야 만들어졌다

강연 후반부는 한글날에 학교를 가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넘어간다. 쉬었다 안 쉬었다 한 내력이 실제로 꽤 복잡하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반포 500돌에 맞춰 한글날이 법정공휴일이 됐다. 1949년 6월 4일에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이 대통령령 제124호로 처음 만들어질 때도 한글날이 이름을 올렸다. 다만 국경일은 아니었다. 그때 국경일은 3·1절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넷뿐이었다.

1990년 11월 5일 국무회의가 대통령령 제13155호를 의결하면서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졌다. 쉬는 날이 많아 경제가 어렵다는 경제 단체의 건의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적용은 이듬해부터라, 실제로 쉬지 못한 첫 한글날은 1991년이다.

이때부터 한글 단체들이 국회에 청원을 넣기 시작했다. 법안은 여러 번 발의됐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되기를 되풀이했고, 2005년 12월 8일 본회의에 가서야 국경일 승격안이 통과됐다. 국경일은 다섯이 됐지만 쉬는 날은 여전히 아니었다.

공휴일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또 일곱 해 뒤다. 2012년 12월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정령이 12월 28일 시행되면서 2013년부터 다시 쉬게 됐다. 빠진 지 22년 만이다. 지금은 국어기본법 제20조가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해 두고 기념행사를 하도록 못박고 있다.

1991년에 빠지고 2013년에 돌아왔다. 그 사이가 22년이다.

영상에서 볼 만한 곳

  • 0:09 — 올해가 한글날 제정 100년이라는 첫 마디. 이 강연의 출발점이다
  • 1:46 — 왜 11월 4일이었나. 그날이 음력 9월 29일이라는 대목
  • 2:05 — 그날 붙은 이름이 한글날이 아니라 가갸날이었다는 이야기
  • 13:15 — 10월 9일이 어떻게 나왔는지, 해례본의 9월 상한을 푸는 구간
  • 19:24 — 공휴일이 됐다 빠졌다 다시 된 내력을 연도별로 정리하는 대목

강연은 외래어가 넘친다는 걱정 대신 우리말을 단단히 붙들자는 이야기로 끝난다. 말이 흔들리면 글자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100돌은 10월 9일 금요일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