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0년 전 왕들도 금 얘기만 했다 — 대영박물관 아마르나 서신 41분, 네 토막으로 끊어 보기
Reading the Pharaoh's private mail with Irving Finkel | The Amarna Letters | Curator's Corner ep100 · The British Museum
1887년 이집트 중부의 한 마을. 밭 근처에서 흙을 뒤지던 여자가 딱딱하게 구운 흙덩이를 한 무더기 찾아냅니다. 쓸모없는 옛 흙조각이라 여겨 이웃에게 헐값에 넘겼고, 그 흙덩이는 몇 번 더 주인을 바꿉니다. 그게 파라오에게 온 편지였다는 건 한참 뒤에야 드러납니다. 대영박물관이 9월 25일에 올린 '큐레이터스 코너' 100회는 바로 이 점토판을 다룹니다. 41분 41초로 길지만 안은 네 덩어리로 반듯하게 갈라집니다. 순서대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끌리는 쪽부터 열면 됩니다.
41분이 네 덩어리로 갈라집니다
지도부터 펴 두겠습니다. 아래 시간은 박물관이 영상 설명란에 적어 둔 구간 그대로라 재생바에도 같은 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칸은 열 개인데 내용으로 묶으면 네 덩어리가 됩니다.
0:00~6:50 발견 — 0:00 100회 인사, 0:45 점토판이 세상에 나온 경위, 3:35 이 편지들이 무엇인지, 5:40 번역문을 읽는 방식 소개. 편지 몇 통을 읽기 전에 알아 둘 배경을 7분 안에 깔아 줍니다.
6:50~20:20 대국 왕들의 편지 — 6:50 금과 선물, 왕실 혼인, 13:38 새 파라오에게 쏟아지는 불평과 또다시 금. 바빌론·미탄니·아시리아 왕이 파라오에게 보낸 편지가 이어집니다. 영상에서 가장 웃긴 대목이 여기 몰려 있습니다.
20:20~30:55 속국의 구조 요청 — 20:20 하비루와 가나안의 위기. 이집트가 거느린 작은 도시의 통치자들이 도와 달라고 쓴 편지들입니다. 분위기가 확 무거워집니다.
30:55~41:41 편지를 쓴 사람들 — 30:55 이집트인이 왜 쐐기문자로 편지를 썼나, 36:32 서기를 둘러싼 이야기, 40:50 시리즈 마지막에 늘 나오던 문양의 정체. 글자와 언어에 관심이 있다면 이 11분이 영상의 본론입니다.
6분 50초, 20분 20초, 30분 55초. 이 세 숫자만 기억하면 원하는 덩어리로 바로 건너뜁니다.
처음엔 다들 가짜라고 했습니다
0분 45초부터 발견 이야기가 나옵니다. 1887년, 점토판 382점이 이집트에서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정식 발굴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파낸 것이 골동품 시장을 돌았고, 보는 사람마다 이게 뭔지 몰랐습니다.
의심받을 만했습니다. 쐐기문자는 메소포타미아, 지금의 이라크 땅에서 쓰던 글자입니다. 그런 글이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는 것부터 이상했습니다. 생김새도 낯설었습니다. 핀켈이 탁자 위 점토판을 하나씩 들어 보이는데, 쨍한 주황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습니다. 오븐에 넣으려고 빚은 반죽처럼 동그란 것도 있고 손바닥보다 작은 것도 있습니다. 글씨도 거칠었습니다. 늘 반듯한 메소포타미아 점토판만 보던 사람 눈에는 위조품으로 보이기 딱 좋았습니다.
판을 뒤집은 사람이 당시 대영박물관 이집트 유물 책임자였던 월리스 버지입니다. 그는 쐐기문자를 읽을 줄 알았습니다. 몇 줄 읽어 보니 편지였고, 받는 사람 이름까지 보였습니다. '이집트 땅의 왕 니무리야에게'. 아멘호테프 3세를 부르던 이름을 바빌론식 글자로 받아 적은 것이었습니다. 이집트 왕의 칭호를 알고 그걸 자기 글자로 옮겨 쓸 줄 알 만큼 나라들이 서로 얽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3분 35초부터는 이 편지들의 성격을 정리합니다. 기원전 14세기 중동에는 큰 나라 몇이 버티고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속국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가나안 땅 대부분을 현지 통치자들에게 맡겨 다스렸습니다. 편지는 그 전부를 담습니다. 대국 왕끼리 주고받은 외교 서신부터 속국 통치자의 하소연까지 층층이 들어 있습니다.
기간은 짧습니다. 아멘호테프 3세 말년에서 시작해 아크나텐 시대를 지나 투탕카멘 초기까지, 길게 잡아도 30년 남짓입니다. 이유는 발견 장소에 있습니다. 아마르나는 아크나텐이 태양 원반 아텐을 섬기려고 새로 세운 수도였고, 그가 죽자 곧 버려졌습니다. 도시가 짧게 살다 갔으니 문서고에 남은 편지도 그 시절 것뿐입니다. 파라오 쪽 문서고에서 나왔으니 대부분 파라오가 받은 편지이기도 합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한쪽에서만 읽는 셈입니다. 핀켈 말대로 남의 편지를 읽으면 안 되지만, 3,000년이 넘으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같은 글자를 쓰는데 색도 모양도 글씨도 달랐습니다. 그 어긋남 때문에 처음엔 위조품 취급을 받았습니다.
형님이라 불러 놓고 결국은 금을 달라고 합니다
6분 50초부터 이 영상의 재미가 시작됩니다. 대국 왕들의 편지는 첫머리가 거의 똑같습니다. 받는 사람을 형제라 부르고, 나는 잘 지낸다고 알린 다음, 상대의 왕비와 자식과 전차와 말과 군대와 나라까지 하나하나 안부를 묻습니다. 그렇게 한참 추켜세운 뒤에야 본론이 나옵니다. 본론은 대개 정치 아니면 금입니다. 금 쪽이 더 많습니다.
바빌론 왕 카다시만엔릴의 편지가 좋은 예입니다. 아버지 때는 사신을 보내면 금방 돌려보내더니, 내가 보낸 사신은 6년이나 붙잡아 두었다고 따집니다. 6년 만에 보낸 선물은 금 30미나인데 그마저 은처럼 보이는 금이었다고 덧붙입니다. 잔치를 열면서 부르지도 않았다는 섭섭함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나는 곧 새 집을 여니 직접 와서 먹고 마시라고, 나는 당신처럼 굴지 않겠다고 끝맺습니다.
8분 15초 언저리에서는 드물게 파라오 쪽 답장이 나옵니다. 누이를 시집보냈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못 봤다는 항의에, 아멘호테프 3세는 그러면 누이 얼굴을 아는 높은 사람을 보내 보라고 받아칩니다. 당신이 보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이들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선물 한 번 보내 놓고 체면을 세우려 드니 웃어야 하느냐고 비꼬는 대목도 있습니다. 서로를 형제라 부르는 건 실제 형제여서가 아니라 대등하다는 표시였다고 핀켈이 설명합니다.
미탄니 왕 투슈라타가 이 구간의 주인공입니다. 딸을 파라오에게 시집보내면서 금을 넉넉히 청하는데, 이집트에서는 금이 흙만큼 흔하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핀켈은 이 편지를 두고 사랑한다, 형님, 금 보내라, 사랑한다, 금 많으시지 않냐로 요약해 버립니다. 12분 58초 즈음에는 혼수 목록이 이어집니다. 잘 달리는 말 네 마리, 금으로 덮은 전차, 금 채찍, 목걸이, 굴레, 상아, 화살과 단검까지. 읽어 내려가던 핀켈이 이게 다 뭐냐는 얼굴로 한숨을 쉽니다.
13분 38초부터는 공기가 바뀝니다. 아멘호테프 3세가 죽고 아크나텐이 왕위에 오르자, 외국 왕들이 새 파라오를 아버지와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투슈라타는 선왕이 약속한 순금 조각상 대신 나무에 금을 입힌 조각상이 왔다고 따지고, 그래도 안 되자 파라오의 어머니 티예에게 따로 편지를 씁니다. 아프다는데 안부 한 번 안 묻는다고 서운해하다가, 길이 멀어서 그랬다는 말을 듣고 화를 푸는 편지도 있습니다.
18분쯤 등장하는 아시리아 왕 아슈르우발리트의 편지는 신참의 목소리입니다. 선대는 편지를 안 썼지만 오늘 내가 쓴다며 인사를 건네더니, 곧바로 새 궁전을 짓고 있으니 금을 보내라고 합니다. 이 정도 선물로는 사신들 오가는 여비도 안 된다고 합니다. 19분 5초에는 편지에 왜 당신 이름을 내 이름 위에 적었느냐는 항의까지 나옵니다. 외교가 3,300년 동안 별로 안 변했다는 설명란의 한 줄이 괜한 말이 아닙니다.
이집트에서는 금이 흙만큼 흔하다. 바빌론도, 미탄니도, 아시리아도 이 말을 한 번씩 꺼냅니다.
20분 20초부터는 웃음기가 빠집니다
앞 구간이 대등한 왕들의 말다툼이었다면 여기부터는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편지입니다. 첫머리부터 다릅니다. 주인이신 왕의 발아래 일곱 번 그리고 또 일곱 번, 배를 대고 또 등을 대고 엎드린다고 씁니다. 등을 대고 엎드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핀켈이 한마디 얹습니다.
핀켈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크나텐은 새 신앙에 마음을 쏟느라 제국 살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금이 들어오면 반겼지만, 길에 도적이 들끓고 속국이 흔들리는 일에는 손을 놓았습니다. 그러니 이 시기 편지에는 하소연이 많습니다. 그 한가운데 하비루라는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길 가는 사람을 덮치던 떠돌이 무리로, 편지를 쓴 통치자들 눈에는 진압해야 할 골칫거리였습니다.
이 위기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 주는 사람이 22분 25초에 나오는 비블로스의 통치자 리브앗다입니다. 지금의 레바논 해안 도시로, 편지에서는 구블라라고 부릅니다. 남은 편지 가운데 이 사람이 쓴 것만 60통이 넘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이 쓴 경우는 없습니다. 산과 바닷가의 마을이 다 하비루 쪽으로 넘어가고 남은 건 도시 하나와 마을 둘뿐이라고 씁니다. 청동 단검을 든 자에게 아홉 번이나 찔렸다고도 씁니다. 두 달 안에 궁수를 보내지 않으면 남은 마을마저 빼앗긴다고 호소합니다.
24분 즈음 그는 자기 처지를 덫에 걸린 새에 빗댑니다. 영상 전체에서 가장 오래 남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한쪽 편만 들지 않습니다. 리브앗다를 몰아붙이던 압디아시르타도 파라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자신은 왕의 개이자 발밑의 흙이며, 왕을 위해 아무루 땅을 지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적에게서 도시를 구해 준 것도 자기라고 주장합니다. 어느 편지가 진실인지 파라오도 우리도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압디아시르타가 죽은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들 아지루가 뒤를 잇고 영토를 더 넓힙니다. 튜니프 시민들은 20년 동안 왕께 편지를 써 왔다며 도시가 울고 있다고 씁니다. 반역 혐의를 받은 라바유는 개미도 맞으면 문다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 사이 리브앗다는 가족에게서도 아지루와 손잡으라는 말을 듣고, 끝내 형제에게 도시에서 쫓겨납니다.
29분 20초, 마침내 이집트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파라오가 아지루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쫓겨난 비블로스 통치자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오히려 그를 도시에서 끌어냈다고 꾸짖고, 왕을 섬기면 살 것이요 거스르면 온 집안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 편지가 너무 늦었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봅니다.
덫에 걸린 새처럼 구블라에 갇혀 있다. 60통이 넘는 편지를 쓴 사람이 남긴 한 줄입니다.
파라오의 편지를 쓴 건 남의 나라 글자였습니다
30분 55초부터 핀켈이 편지를 내려놓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구간이 그의 전공이라 말이 빨라지고 손짓이 커집니다. 문제는 이렇습니다. 그 시대 가장 힘센 왕인 파라오가 자기 말도 아니고 받는 사람의 말도 아닌 바빌론 말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어떤 사정으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서기들이 이집트에 왔습니다. 아마르나에는 일종의 학교가 있었습니다. 이집트 서기들은 원래 점토에 글을 쓰지 않았으니 흙을 개는 법, 판을 빚는 법, 글자 하나하나까지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1891년과 1892년에 이집트학자 플린더스 피트리가 아마르나를 더 파서 교재로 쓴 점토판들을 찾아냈습니다. 왼쪽 칸에 이집트 말, 오른쪽 칸에 바빌론 말을 적은 단어장도 있고, 바빌론 신화를 베껴 쓴 연습용 판도 있습니다.
그 연습판 옆에 찍힌 빨간 점이 재미있습니다. 이집트 서기들이 끊어 읽기 표시로 찍은 것인데, 바빌론 서기는 절대 하지 않던 습관입니다. 두 글쓰기 문화가 한 판 위에서 섞인 흔적입니다. 34분 즈음에는 키프로스 왕이 보낸 편지가 나옵니다. 우리 땅에 네르갈의 손이 내려 구리 일꾼이 다 죽었으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인데, 병을 신의 손이 치는 것으로 보던 바빌론식 표현을 키프로스 서기도 그대로 씁니다. 투슈라타의 편지 뒷면에는 이집트 서기가 이집트 흘림글씨로 적은 메모 세 줄이 붙어 있습니다. 한 판에 두 문자가 나란히 남은 셈입니다.
36분 32초부터는 서기 자리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이야기합니다. 금이 언제 얼마나 오는지 서기가 가장 먼저 압니다. 누가 매수라도 하면 끝이니 충성심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왕이 분을 못 이겨 온갖 험한 말을 불러 주면 서기가 그걸 그대로 적어야 하나 망설였을 거라는 핀켈의 상상도 이 대목에서 나옵니다. 혼잣말처럼 흘리는데 이 영상에서 가장 크게 웃게 됩니다.
37분 30초 뒤로는 예외들이 소개됩니다. 투슈라타가 딸과 함께 보낸 편지 하나는 바빌론 말이 아니라 미탄니 사람들 말인 후르리어로 적혀 있습니다. 500줄에 이르는 이 편지가 지금까지 남은 후르리어 문장 가운데 가장 깁니다. 지금의 튀르키예 서남부에 있던 아르자와 왕은 히타이트 말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편지 끝에서 왕은 읽는 서기에게 따로 말을 겁니다. 여기 오는 편지는 늘 히타이트 말로 쓰니 당신도 그렇게 써 달라고요.
40분 50초의 마지막 1분은 100회를 기다려 온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매회 끝에 나오던 동그란 쐐기문자 문양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이 그동안 쏟아졌는데, 여기서 답이 나옵니다. 아마르나 서기들이 배웠을 바빌론 말로 요즘 유튜브에서 늘 듣는 그 한마디를 옮긴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영상 맨 끝에서 직접 확인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파라오의 궁정에서 편지는 바빌론 말로 들어오고, 이집트 말로 읽히고, 다시 바빌론 말로 나갔습니다.
바쁘면 여기만
- 0분 45초 — 1887년, 가짜 취급을 받던 점토판이 파라오의 편지로 밝혀지는 과정. 3분이면 됩니다.
- 6분 50초 — 바빌론 왕의 6년 치 섭섭함과 투슈라타의 금 타령. 영상에서 가장 웃긴 7분입니다.
- 22분 25초 — 비블로스의 리브앗다. 60통 넘게 도움을 청한 사람의 편지라 10분만 볼 수 있다면 여기입니다.
- 30분 55초 — 이집트가 왜 남의 나라 글자로 편지를 썼는지, 빨간 점과 단어장으로 풀어 줍니다.
- 40분 50초 — 100회 동안 영상 끝에 걸려 있던 문양의 뜻. 마지막 1분은 꼭 보고 닫으세요.
41분을 다 보고 나면 이 점토판들이 왜 특별한지 알게 됩니다. 후대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쓴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체면을 차리다가도 금 얘기에서 속내가 튀어나오고, 절박한 사람은 같은 부탁을 몇십 번씩 되풀이합니다. 3,300년 전 사람들의 목소리가 흙판 위에 그렇게 날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